<사진설명> 작가 송문영. 경상남도 함양산. 수상=2007년 전국목구조기술경진대회 산림청장상 2003년 통일미술대전 행정자치부장관상. 경력=한국서각협회 고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함양지부 초대회장. 한국미술협회 함양지부 지부장. 대한민국미술대전(공예기타) 2차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서예대전운영심사위원. 具本甲의 지리산 여행기 6 한겨레신문은 송문영 작가를 이렇게 평(評)했다. “송작가 솜씨가 가장 돋보이는 쪽은 아무래도 둥근 음각 방식입니다. 둥근 칼로 파내 글자를 새기지만 착시효과로 양각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게 특징이죠" 작가는 말합니다. 양각보다 음각이 훨씬 어렵다고요. 양각은 주변을 파내어 드러내기만 하면 되지만 음각은 음에서 음과 양을 잡아야 하니. 그렇다 합니다. #1 서예 거목 도연(陶然) 선생에 대한 추억 경남 고성군에 진사(辰砂) 도자기 명인 신재균이 산다. 도예계 거목 신정희옹 조카이지만 신옹과는 작품세계가 180도 다르다. 신옹 작품이 소담하고 정갈하다면 신재균은 투박하고 을씨년스럽다. 그런. 신재균 작품이 마음에 들어 주말마다 고성으로 내려가 도자기관련 이야기를 나눴던 시절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로 입성했던 1998년 2월 어느 날. 고성 바닷가에 폭설같은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도자기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신재균은 “창작활동을 하다보니 도자기보다 서예가 심오한 것 같더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받아. 내가 한마디 건넸다. “신 선생. 저는 전주사람 강암. 석전 글씨보다 운재(芸齋) 윤재술(尹濟述) 선생 글씨가 참 마음에 듭디다. 서예 문외한인지라. 왜 좋으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운재 글씨를 보면 뭐랄까. 그윽한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디다” “아. 운재 선생 글씨? 아주 좋심더. 운재는 호남 최고 명필 심농 조기석(心農 趙沂錫.1897∼1935) 문하생이지예?” 그때. 나는 신재균에게 경박한 질문을 했다. “전주 서예 걸물은 수두룩한데 경남 땅엔 왜 내로라 하는 서예 거물이 없나요?” 신재균은 잠시. 얼굴이 푸르락 하더니만 뜬금 없이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눈도 펑펑 오고 술도 마셨고. 곤양(경남 사천) 까정 차 좀 태아도고!” 신재균은 사천 곤양 어느 누옥으로 나를 데려갔다. 누옥엔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9순 노인이 계셨고 그 옆엔 정숙한 40대 여인(박성아. 진주 도원서예학원장)이 부지런히 먹을 갈고 있었다. 먹 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잠시. 노인 누옥 뜰에서 담배를 하나 피우고 있노라니 신재균이 다가와 하는 말. “저 분이 당대 최고 명필 도연(陶然) 김정 선생님임니더. 성파 하동주옹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를 전수 받았지예. 연세가 90 너머 언제 이승과 하직할지 모를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 훈육시키는데 저리 열중임니더. 제자들은 후제(나중) 이 나라 미술 거목이 될낍니더. 어른께 특별히 청을 해놓았으니 이곳에 온 김에 서예 기운 담푹 몸에 담아 가소!” 지금도 도연 선생의 붓 움직이는 모습이 선하다. 노인은 온몸을 다해 붓으로 화선지에 푸른 노송의 기와 황소의 거침 그 자체를 불어넣고 있었다. 노인은 그 날. 오온계공(五蘊階空). 덕불고(德不孤)를 쓰셨다. 노인은 나에게 “두 글을 주노니 항시선(恒時禪)하라”고 하셨다. 노인은 이듬해 이승을 떠났다. ▲ 지리산 제일문. 이곳에 오도재가 있다. 오도재는 청해(靑梅) 인오조사(印悟祖師)가 득도한 신령스런 곳이다. 송작가는 도연 김정. 삼연 노중석 선생한테서 각각 3년반씩 붓글씨를 배웠다. 특히 도연한테는. 스승이 사는 사천으로 거처를 옮겨 추사체를 익혔다. 다른 사람의 글씨를 얻어 새겨주다가 자필자각을 시작한 것은 스승이 돌아가신 1999년 이후. 스승 앞에 자필임네 하고 내세우지 못한 것은 글씨의 세계가 워낙 깊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 임종섭기자 기(記). #2 스승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 맥을 이어받다 세월이 흘러 2002년 겨울. 그때도 눈이 펑펑 내렸던 것 같다. 나는 함양 수동사람 임채돈과 함양 차부 옆 은정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함양에 서예 대가 계시냐?” 묻자 임채돈은 “나는 서예 서자를 모린다. 서각도 서예하고 관계 있나?” “있지” “그라몬 함양에 서각하는 사람 소개시켜 주까?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에 사는 송문영이라고 칸다.” 임채돈. 그는 나를 송문영 서각가(호: 南史. 森林)에게로 데려갔다. 서각가 집 앞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수 십 그루 서있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공교롭게도 내가 흠모하는 도연 선생 제자였다. “도연 선생한테서 3년반. 삼연 노중석 선생한테서 3년반을 배웠습니다. 도연 선생한테서. 비 갠 뒤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광풍제일(光風霽日)을 배웠지요. 모름지기 진실된 예인이 되려면 마음가짐이 광풍제일이여야 한다…또. 도연 선생님은 저에게 표현하고자 하면 어설프게 하지말고 정확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죠. 정확이라? 선생님 말씀. 의역해보면 아마. 작품 창작할 때. 작품 속에 혼을 집어넣으라는 뜻이 되겠죠? ” 도연에게서 서예를 익힌 송문영 작가. 그 다음 단계로 서각을 선택한다. “서각이란 문자 그대로 글씨를 새긴다는 뜻입니다. 미술역사가들은. 서각행위를 이렇게 말해요. 인간이 무엇인가 새긴다는 행위는 고대 신앙의 주술적인 행위이거나 생명이 유한한 인간이 무엇인가 영원히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그 예를 들라면 고려 팔만대장경. 인도 아소카 왕 비문.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송작가 말을 받았다. “호암미술관 큐레이터 Q한테서. 서각의 매력이 어떠한지 들은 적이 있습니다. Q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왜. 세잔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가? 그 그림 속에 막강한 서기가 분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각은 세잔 고흐보다 한 수 위이다. 왜냐. 고흐. 박수근 그림에 없는 그 무엇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각은 그림 서예에. 우주의 기를 덧입힌 미술장르라네. 우주 기운 핵심 나무(木). 칼(金)이 동원되거든. 서각작품. 그 곳엔 부작기운이 감돌고 있다네. 추사 서예로 제작된 주련을 보라. 나는 그 주련 속에서 부처님 원력뿐만 아니라 우주 슈퍼에너지가 담겨져 있다고 나는. 믿는다네” 이 말에 송작가. 그냥 “허허허” 웃기만 했다. #3 지리산 백운산 등지 자생하는 나무에 당채. 들기름으로 작품 마무리 송문영 작가. 그와의 짧은 만남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때. 나는 잠깐 눈을 돌려 송작가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싶어 그의 서가를 훑어보았다. 수덕사 승가대학 발간 <치문경훈(緇門警訓)>. 김종직 찬(饌) <청구풍아(靑丘風雅)>. <고문진보(古文眞寶)>. 최완수 역 <추사집>. 이규복 <개설 한국서예사> 등이 보였다. 작가는 저 고전 속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명구를 찾아내 그 명구를 서예화 한 후 마침내 나무와 칼로서 아기 하나(작품) 잉태시키는구나! 작별인사를 하는데 송 작가가 “이왕 온 김에 숨겨둔 자식(?) 구경이나 하라”며 우리를 내밀한 곳으로 데려간다. 자식 이름은 아래와 같다.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세심(洗心). 마음 곧게 하면 길하다(貞吉). 고매한 품격(品高). 항상 욕심이 없는 상태 (常無慾). 돈독한 마음(篤志). 욕심 없이 농삿일에 전념하는 농부 심사. 애농청정심(愛農淸淨心). 죄다 마음과 관련된 글귀다. 전통적인 전각기법에 공간분할과 다양한 획의 구사가 눈길을 끌게 한다. 재료 선택도 돋보인다.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은행. 벚. 밤. 대추. 호두. 살구. 귀목을 썼으며 당채와 들기름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4 함양출신 미술평론가 권진상 서각 감상법 또 세월이 흘러. 이번 달 8일 수요일. 주간함양 편집진으로부터 송문영 서각가 심층인터뷰를 해달라는 전갈을 받았다. 작가와 관련된 사적 스토리 취재하면 무엇하랴? 작품만 제대로 감상하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가 언제 송작가 작품. 제대로 감상한 적이 있었던가? 송작가 작품 가운데 고작 본 것은 지리산 오도재 제일문 현판(정주상 선생 글씨) 뿐. 지리산 제일문은 성곽 길이 38.7m 높이 8m 폭 7.7m 문루 81㎡ 규모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송작가는 이 현판 외 진주성 공북문과 촉석문 현판을 새겼고 밀양 삼양사. 진주 월경사. 군산 상주사. 성남 대광사 일주문 현판과 주련. 단양 구인사 천태종 역대조사전 등을 창작했다. 작가는 이들 작품 속에 어떤 기운을 담았을까? 요즘 작가는 어떤 글귀를 선택. 서각작업을 할까? 그런 궁금증이 발동. 황산마을 작업실을 찾았다. 공부 못하는 사람. 예습 잘해야 하는 법. 송작가 작품세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컨닝페이퍼를 입수했다. 임종업 한겨레신문 미술담당기자는 송작가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송문영 작가의 솜씨가 가장 돋보이는 쪽은 아무래도 둥근 음각 방식입니다. 둥근 칼로 파내 글자를 새기지만 착시효과로 양각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게 특징이죠" 작가는 말합니다. 양각보다 음각이 훨씬 어렵다고요. 양각은 주변을 파내어 드러내기만 하면 되지만 음각은 음에서 음과 양을 잡아야 하니. 그렇다 합니다. 함양출신 권진상 미술평론가는 나에게 이렇게 귀띔한다. “송 작가 작품을 바라보면 과장된 상징이 없습니다. 순박한 아름다움과 자연에 순응하는 아름다움뿐이지요. 저는 송선생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무위자연의 도가 바로 저런 거구나 그런 생각에 젖어듭니다” 이윽고 차는 황산마을에 도착했다. 함양군 수동 사는 장애우 김기수 청년이 맑을 정자를 새기고 있다. 일전에 한번 인사를 나눈터라 “어때. 솜씨가 좀 늘었느냐? 주인은?” “스승님께서는 지금 논에 가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송작가는 전각을 하는 한편 논농사도 한다. 잠시 후 주인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와 손사래를 치며 “무슨 인터뷰 그냥. 금강송 아래에서 그간 못 나눈 회포나 풀자”고 한다. 그래도 서각 관련 몇 마디는 물어야 하겠기에. -요즘 무슨 글에 심취해 있나요? “석화광중(石火光中)을 붙잡고 있습니다. 와우각상쟁하사(달팽이 뿔 위에서 다투다니 웬말이요)/ 석화광중기차신(부싯돌 불빛같은 짧은 인생인 것을)/ 수부수빈차환락(분해도 가난해도 기쁨인 것을)/ 부개구소시치인(입을 열어 웃지 않으면 바보). 백거이의 대주편에 있는 한시입니다. 조금더 풀이하면 부싯돌 칠 때 찰라지간 일어나는 불빛 즉. 사람이 태어나서 짧은 인생을 사는데 다투어 본들 무엇하리가 되겠죠.” 작업실 한켠에 느티나무 판자 위에 송 작가가 일필휘지한 석화광중(石火光中)이 놓여 있다. 임종혁 한겨레 기자는 이 작품을 보고 “서늘한 골기(骨氣)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늘한 골기라? 여기서 말하는 골기란 뼈 기운이 아닌 서예에서. 힘찬 필력(筆力)을 의미한다. 그 골기 우리도 느껴보자. 송 작가 서각 작품 중 일부를 소개한다. 여몽(如夢). 개벽(開闢). 호고(好古). 세심(洗心). 마철저(磨鐵杵) …‘끈기있게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질문 하나 드립니다. 송작가 댁(宅) 말고 언제. 어디서 선생 작품을 감상할 수 있나요?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함양예술마을 기당(箕堂) 김원식씨가 총지휘하는 전각전이 있습니다. 장소는 함양군 안의면 소재 광풍루. 그 전시회에 제 작품이 출품됩니다. 그리고 9월 18일 인천문화예술회관서 열리는 국제각자공모대전 초대작가전에 작품을 선보일 참입니다.” 송작가는 뭐랄까? 당최 수줍은 소년같고 자신을 좀체 내비치려하지 않아. 심층인터뷰가 안된다. 뭘 질문하면 그냥 허허 웃을 뿐. 이 딴 인터뷰 그만 하고 공기좋고 물소리 맑은 황산마을. 한바퀴 돌잔다. 나는 이런 모습의 송작가가 참 좋다. 그와 함께 걷는 동네 한바퀴? 미국 주식황제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과의 점심식사보다 값질 터! 독자 여러분 혹여. 황산마을 송작가 작업실 구경할 기회 있으면 서각작품만 보시고 그냥 돌아오지 마세요. 송작가 3대조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튼실한 금강송을 온몸으로 껴안아 보세요. 어떤 효험이 있었다면 저를 잊지 마시구요. 금강송 곁에서. 금강송 같은 튼실한 아기(작품) 생산하고 있는 송 작가. 그에게 한편의 시를 바치며 이 글. 마무리한다. 금강송(金剛松) 정수자(1957∼ )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