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면 쟁쟁한 무장이나 장군들이 즐비하다. 신궁으로 소문난 주몽, 이성계. 수전으로 유명한 을지문덕과 강감찬 등... 그리고 가장 유명한 성웅 이순신 제독까지. 하지만 오늘 이 기사에서 다룰 사람은 여태껏 당신이 알아왔던 저 위의 무인들과는 조금 혹은 많이 다른 모습의 무인이다. 그렇다, 제목에서 보듯이 오늘 기사로 다룰 인물은 고려시대의 장수 척준경이다. 왜 하필 인지도나 역사적 기록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인물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척준경은 인지도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활약과, 그 적은 기록 하나하나마다 상상을 초월한 전공이 새겨져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 만큼 ‘무인’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한국사의 장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임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알아주기 바란다. 어쩌면 당신이 이 기사의 끝머리를 읽은 직후, 척준경을 검색창에 쳐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척준경의 탄생, 맹장의 출현>척준경은 곡산 출신으로, 가난한 향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 연마를 즐기고, 학문에는 그다지 뜻을 두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후 아버지가 죽고 계림부 소속 종자로 들어가게 되고 이때의 인연으로 계림공이 왕이 되었을 때 추밀원 별가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 군사 업무를 보게 된다. 그리고 1104년 2월, 정주성을 침공한 여진족에게 당해 총사령관 임간 휘하의 고려군이 패퇴할 위기에 처했는데, 이때 척준경은 별가 직책에 있었다. 하급직에 불과했지만, 척준경은 총사령관에게 직접 무기 하나와 말 한 필을 요구했고, 그대로 전장으로 나가 적장 2명을 베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그로 인해 여진족 추격대를 뿌리친 고려군은 전멸의 사태는 막게 된다. 하지만 고위 장수들에게 뭔가 단단히 찍힌 게 있었는지, 공을 세웠음에도 오히려 옥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이때 척준경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를 등용한 사람이 바로 여진 정벌의 총책임자 윤관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척준경은 윤관과 함께 여진 정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인간으로서는 보기 힘든 무공과 전과를 보여주게 된다.<전설을 남긴 제 2차 여진 정벌>윤관의 별무반에 녹사로 임관하게 된 척준경은 정벌 초반부부터 평범하게 전투를 끝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성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서 정말 엄청난 무력을 행사하게 된다. 척준경은 그 힘들다는 공성에, 그것도 단신으로 성공하여 성벽 위로 올라가 여진족 추장 서너 명을 죽였다. 공성전에서 공격의 입장이 얼마나 힘든지, 또 공성을 할 때 선봉으로, 단신으로 돌격하는 것이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것을 해내고도 적장들을 죽인 척준경이 얼마나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지는 대략적으로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진족에게 기습을 받아 포위되었을 때, 결사대 10명만 이끌고 돌격하여 여진족 병사 10여명을 해치워 지원군이 올 시간을 벌었다. 물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이후 공험진에서는 포위된 고려군 구원, 갈라수 전투 근역에서는 고려군이 패배하는 와중에도 그의 군대만은 전과를 올리며 지는 법이 없었다. 정벌 후반기에는 기동전술까지 사용했으니, 이쯤 되면 정말 척준경의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충무공의 그것과 맞먹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정계 진출, 그리고 우여곡절로 점철된 말년>여진 정벌 이후 중앙 정치에 입문하게 된 그는 이때부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인생을 살게 되는데, 역적 이자겸의 편에 붙어 왕인 인종을 감금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인종의 이간질에 넘어가고, 비단 그것이 아니더라도 왕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인종을 도와 이자겸을 척결하고, 명실상부한 고려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지만, 얼마 안 되어 정지상의 탄핵 상소에 어떠한 반발도 없이 수긍하고 실권하여 유배를 간다. 그리고 말년에 복권되었고 직후 등창으로 사망한다. 그는 과연 어떤 꿈을 가졌을까? 그리고 어떤 이상을 추구했을까? 이것은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어떤 성향으로 일단락 짓기가 굉장히 어려운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권력욕이 있어서 이자겸과 손잡고 반역자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왕을 도와 그 이자겸을 몰아내고, 이후 1인자가 되었음에도 너무나도 손쉽게 물러나버렸다. 나쁘다, 착하다 따위의 단어로 곧잘 설명이 되질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쩌면 현대 한국의 사극에서 아직까지 그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전설로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감히 추측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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