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중요하달 것도 없는 일상의 작은 생활들을 반복하며 살아가지만 최선을 다하고 소소한 행복을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슬기롭고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살이 통통 오른 참새 몇 마리가 마당가 순록의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재잘거린다. 친구들끼리 어제 있었던 일들을 깔깔거리며 수다 떠는 것 같다. 저렇게 떠들지만 내가 조금만 방심하면 손바닥만한 채마밭에 뿌려놓은 채소 씨앗들을 다 파먹어 버리고 남는 게 없기 때문에 우습게도 나는 저놈들의 접근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사람인 내가 새와 심각한 대치를 하고 있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볕 잘 드는 데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새를 쫓거나 주변을 감상해보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분에 차는 사치인지 여유인지 모르겠다.
어제부터 울타리 건너 밭에 ‘고집불통 영감’이라고 내가 지칭한 영감이 일하고 있다. 나보다 한 살 위인데 피부가 볕에 그을려 열 살이나 많게 늙어 보이지만 힘이 장사다. 나는 칠십이 가까워 오자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 낑낑거린다. 넓은 땅의 산속 집을 팔고 읍내로 내려온 것도 힘이 딸려 집과 땅을 관리할 수 없어서이다.
고집불통 영감은 작년에 두 번이나 오토바이 사고가 나 서너 달 병원에 입원했었다. 충분히 먹고살 만큼 땅부자인데 이참에 농사일은 그만두고 편히 사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아예 목발 짚고 나와 밭에 앉아 기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우기인데도 밭에 나와 비를 쫄딱 맞으며 일을 한다. 삼십오도 씩 기온이 올라가는 폭염의 날에도 뙤약볕에서 그냥 그대로 참으로 무식하게 일을 한다. “일하는 게 나는 차라리 편해요. 평생 해온 농사일보다 쉬운 게 어디 있겠어요? 일하면 밥맛 좋고, 잠 잘 오고, 시간도 금방 가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즐길 줄 알아야지 평생 일하다 밭에서 쓰러질 사람이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영감이 부러워진다. 할 일없어 빈둥거리는 나보다 그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다 일터에서 순직하면 그게 영광스러운 일 아닌가? 나이 들수록 움켜쥐고 싶은 욕심이 많아지고, 일을 크게 벌여야 진보하고 성공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일찍이 공자님이 다 나이의 경계를 주었다.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하라 했으니 칠순이 내일 모레인 나는 욕심을 버리고 바람을 타는 나뭇잎처럼 자유로이 흔들리며 마음 가는 대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믿었던 정신마저 깜빡깜빡 등대불이 되고, 눈은 안개 속을 헤매고, 귀는 점점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내 목소리 홀로 높아진다.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몸뚱어리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어 약을 밥 먹듯이 한다. 몸에 좋다는 보약까지 먹어본들 가거나 오는 세월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세상을 볼 만치 보았으니 눈을 쉬게 해주고, 입은 닫고 온갖 소리를 다 듣고 욕까지도 들으며 살았으니 한쪽 귀는 이제 닫아 놓고 한쪽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소소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참새 쫓는 일을 그만 두었다. 씨앗을 다 쪼아 먹는 들 그게 무슨 커다란 일이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도 않고 천부가 다 기르신다 하거늘 내가 무엇을 금지시키랴.
소소한 행복... 소소한 행복... 나는 따뜻한 다볕 아래 벌써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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