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찬장 어딘가에 동글동글하게 말아 아껴둔 까만 비닐봉지를 찾고 있었다. 생필품을 사러 가게에 가면 플라스틱 비닐봉지를 내어주는 가게는 어쩌다 한두 군데였다. 대부분 종이봉지에 물건을 싸서 주니 이동 중에 종이가 찢어지고 물건들은 우수수 길거리에 떨어지곤 했다. 그러기에 어쩌다 얻게 된 플라스틱 비닐봉지는 귀하고도 귀한 물건이기만 했다. 가볍기도 하고 찢어질 염려가 없으니 시장이나 가게를 가는 날에는 챙겨두었던 비닐봉지들 몇 개를 품고 집을 나서곤 했다. 20년 전, 당시 한국에선 지금과 마찬가지로 어딜 가나 널린 게 비닐봉지였으니 귀하기는커녕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비닐봉지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인도에서는 비닐봉지를 찾기도 얻기도 힘들었다. 인도 정부는 당시 모든 플라스틱 제품에 특별사치소비세를 부과했던 터라 플라스틱 제품들은 무조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대였으며 비닐봉지 역시 그 대상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비닐봉지가 없어 잠시 주춤하고 서 있자니, 보관해둔 비닐봉지가 집에서 없어지는 일이 벌써 한 두 차례가 아닌 것이 생각났다. 이어서 집안일을 거들어 주러 내 집에 오는 아마(집안일을 해주는 아줌마를 지칭하는 인도어)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인도에서 자원봉사자로 생활하고 있던 터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사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건 생각지도 못하는 경제적 상황에 있다. 일도 나가지 않은 채 술만 퍼먹는다는 남편이야기를 하면서, 걸칠 옷이 없었던지 거의 나체인 10살 남짓 남자아이와 3살 남짓 여자아이를 앞장세운 채, 나의 작은 집 문 앞에 와서 일거리를 달라고 눈시울이 그렁했던 아마였다. 산티(평화라는 뜻의 인도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작은 여인... 나는 나의 작은 생활비 주머니를 털어 그 여인과 아이들을 내 집에서 지내게 했다. 그들은 낮에 나의 집에서 지내었고 저녁이면 일터에서 돌아온 나를 맞아주는 식구들이 되어 있었다. 아차! 그렇구나! 비닐봉지!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비닐봉지를 산티가 가져 간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궁색한 살림터가 대궐처럼만 느껴졌을 산티. 그녀 역시 내 집에서 몇 번 경험한 비닐봉지의 용이함은 종이와는 비할 수 없는 위력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녀 역시 찢어지기 일쑤인 종이봉지 앞에서 비닐봉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들에 여러 차례 마주했을 것이었다. 엄연히 거처할 땅이 있고 작은 텃밭도 일구고 있던 산티네 살림집은 1~2 평 남짓의 맨 땅에 지푸라기 거적을 얹은, 겨우 땡볕만 피할 수 있는, 비가림도 제대로 안되는 그런 집이었다. 궁색함을 논할 수 없는 궁색 이하의 경지였다. 밥을 짓는 곳과 잠을 자는 자리가 구분이 없는, 뱀과 지네와 전갈의 침범이 더 정당한 맨땅의 바닥에, 네 식구들의 밤잠만 겨우 허락되는 그런 집이었다. 이내 나는 그녀가 내 집에서 이미 몇 차례나 비닐봉지를 가져갔을 정황들을 생각해 내었다. 비닐봉지의 소중함은 나와 그녀가 나누고 있던 동변상련과도 같은 것이었다. 손짓과 웃음으로 그녀와 의사소통을 해왔던 나는 ‘이제부터 비닐봉지를 말없이 가져가지 말고 니꺼 내꺼 서로 챙겨서 함께 사용하자’ 하고 겨우 겨우 말했다. 그녀의 함박웃음은 산티(평화) 그 자체였다. 우리의 어지럽고 부산한 일상 속엔 서로의 따스함이 자리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부와 가난을 가르는 축대를 넘어 따스한 마을, 따스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사람 내면의 그 무엇이 있다. 위력적일 만큼 절실한 가하면, 하루아침에 구제 불능의 쓰레기로 전락하기도 하는 비닐봉지가 부와 가난의 축대 노릇을 아무리 한들 그 축대를 뛰어넘을 무언가가 저기 말고 여기 일상 속에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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