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겨울은 대개 농한기지만 엄천골짝 사람들은 오히려 겨울에 바쁘다.모두들 곶감농사 짓느라 겨울내내 나들이 한번 못하더니 곶감을 다 판 지금에서야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시산제 지내러 마을 뒷산 독바위로 우루루 올라간다.모두들 도시락이 든 간단한 배낭을 하나씩 메고 왔는데 나무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가는 사람도 보인다. <절터아지매는 우째 배낭이 엄능교?> <밭에 나왔다가 산에 간다캐서 너무 좋아 따라 가능기라... 내는 아즉 아츰도 안 묵었다....>절터아지매는 예전에 나물캐러, 땔감하러 하루 두번씩 다니던 독바위에 간다는 말에 아무 준비도 없이 합류한 모양이다. 산죽비트를 지나면서는 ‘여기가 예전에 우리 밭이었는기라...’노장대를 지나면서 ‘저기 집터가 우리 영감이 태어나 살던 곳인기라...’하며 즐거워하시는데 나무 지팡이에 체중을 싣고 걷는 게 어쩐지 불안해 보인다. 체중이 보통 남자보다 십키로 이상 더 무겁기 때문에 여차하면 업고 내려갈 수도 없다. 할매당 가기 전에 거대한 돌배나무가 있다. 돌배가 한번 열리면 수십푸대씩 수확할 수 있다는데 수령이 4백년 이상 되었다고 추정한다. 지난 여름엔 마을 친구 털보랑 돌배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굴이랑 주변 잡목들을 일부 정비해주었다. 워낙 거대한 나무라 해거리를 해서 7~8년에 한번씩 배가 열린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의 큰 자랑거리이다. 이렇게 거대한 돌배나무에 하얀 배꽃이 가득 피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바람 불어 배꽃이 떨어질 때면...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돌배나무가 마을의 관광상품으로도 큰 몫을 해낼거라는 생각이다.
할매당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데 우아한 자태의 자작나무가 눈에 쏘옥 들어온다. 정말 늘씬하고 아름답다. 같이 올라간 친구 털보의 고로쇠 집수정을 지나니 환희대가 눈 앞이다. 왜 환희대라고 불리는지는 바위 위에 올라서보면 알게된다. 환희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세동마을의 마적송 못지않게 품격이 있어 보인다. 소나무 옆에 서서 엄천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문수사부터 세동 마을까지 잘 보인다.
이어 일행은 헐떡거리며 독바위에 올라 올 한해도 무탈하게 그리고 부자되게 해달라고 산신령님께 절을 했다. 돼지머리를 제물로 올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의 큰 소득원인 곶감도 올리고 막걸리도 올리고 다 같이 또 따로 절을 했다. 오늘 돼지는 수입이 짭짤하다. 처음에는 입에 봉투하나 물고 돈맛을 보더니 코로도 돈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귀로도 꼬깃꼬깃 지폐소리를 듣더니 아이쿠~ 급기야 돈이 눈을 가려 버렸다. 돈에 눈먼 사람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시산제가 끝날 무렵 절터아지매가 힘겹게 올라오셔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박수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독바위가 흔들거렸다. 본인 말대로 하루에도 두번씩이나 올라오던 이곳에 다시 못 올라올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특별히 기념촬영을 부탁하시는데 누구에게 빌린건지 빨간 털모자를 예쁘게 쓰시고 폼을 잡으신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땔감이 없어 이렇게 높은 곳까지 나무하러 왔다는데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라 한다. ‘참말로 거짓말같이 살은기라~’ 그 때는 모두 그렇게 거짓말처럼 살았다고 한다. 문정 아지매는 딸이 사준 효녀신발이 너무 좋아서 신고 왔는데 내리막길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예 신발을 벗고 내려간다. 산신제를 지내고 도시락을 먹으며 오월 꽃필 때 이번에는 기필코 설악산으로 원정 산행을 가기로 의견이 모였는데 가기 전에 신발검사는 필히 해야겠다. 험한 설악산에서 엄천골 사람들의 기개를 한번 크게 펼쳐보려고 하는데 신발부분이 아무래도 취약한 것 같다. 잘 벗겨지고 미끄러지는 효녀신발을 신고 설악산에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번 기회에 튼튼한 등산화도 준비하고 삐리리한 약초배낭 대신 방수도 되고 깔도 좋은 등산용 배낭도 하나씩 마련토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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