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산책길에 주먹만한 강아지를 보았습니다. 고개 너머 이웃 마을을 지나가는데 낯선 강아지가 한 마리 보이길래 “호오~고놈 눈이 참 이국적이네~” 하고 지나쳤습니다. 아주 어린 것이었어요. 3~4개월이나 되었을라나? 체구도 쪼그마한 것이 재래종 같아 보이는데 완전 토종은 아니고, 스피츠인가 하고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하여튼 아내가 무슨 종이냐고 물어 보는데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조상 중에 말티즈도 있었던 거 같고 요키도 의심스러운데 좌우지간 우수한 2세를 배출하기 위해 다양한 조상들이 고뇌하고 노력했음을 짐작케 하는 넘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이맘 때 산책하며 지나가는 이웃 마을에서 저렇게 눈이 매력적인 넘은 본 적이 없는지라 혹 유기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양심에 털 난 사람이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슬그머니 유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석이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나~ 저것이 왜 우릴 따라와? 어째?” 하며 아내는 당황하고, 나는 “안돼~ 따라오면 안 돼~”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막무가내로 따라오길래 안 되겠다 싶어 돌아서서 눈을 부라리며 “얏! 안 돼! 안 돼! 안 돼!” 하고 허공에 주먹을 사납게 휘둘렀더니 이 녀석이 그제야 상황을 감지했는지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얼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됐기는 하지만 버려진 개를 보이는 대로 다 거두어 줄 처지가 아닌지라 아내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빨리 이웃 마을길을 지나치고 강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모질게 소리쳐놓고도 왜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을까요? 저 어린 것이 무작정 따라와 집에까지 밀고 들어오면 내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내에게 만일 저 넘이 집에까지 따라오면 어쩌지 하고 떠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묵묵부답. 천사와 악마가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근데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못해 뒤에서 누가 자꾸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놀랍게도 이 녀석이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부모한테 혼난 어린애가 찔끔찔끔 눈치 살피며 따라오는 것처럼... 산골마을 마당 있는 집에 살다보니 도시에 사는 친지들이 기르던 애완견을 길러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에서 도무지 못 키우겠으니 제발 좀 키워줘~ 된장 바르지 말고...’ 그 부탁을 다 들어주었으면 지금쯤 우리 집은 동물농장 아님 개판이 되었겠지만 딱 한번 남이 기르던 개가 병이 있는 것도 모르고 예쁘다고 받았다가 두 달 만에 저세상 보내고는 다시는 남이 기르던 개를 받아 키우지는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저 넘을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걷던 강둑길을 벗어나 산기슭 논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좁은 논둑길을 위태롭게 따라오는 아내 걱정을 하면서도 허겁지겁 뺑소니를 치는데 우리가 논길을 벗어나서 다시 강둑길로 접어들 무렵에 뒤돌아보니 놀랍게도 이 넘도 이미 논둑길에 중간정도 접어들어 이제는 노골적으로 쫓고 쫓기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상황이 안 좋다는 확신이 들자 아내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 오지마! 따라 오지마! 니가 날 우째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내는 니를 받아줄 수 없응께...’ 오십을 넘긴 부부가 뛰면 얼마나 뛰겠습니까마는 하여튼 저녁 먹고 배 만지며 산책하다가 100미터 단거리를 두 번 이어 달리고 우리 마을 입구에서 고바위 언덕길을 올라갈 때는 오래달리기로 다시 종목을 바꾸어가며 얼마나 내뺐는지 내가 은행을 털었어도 그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미안하다~ 이 넘아~ 날 야속타 생각지 마라~’
어린 것이 비록 날 따라 잡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 끈기면 니는 충분히 좋은 가족 만날 수 있을 거라 내가 장담하니 부디 좋은 가족만나 잘 살거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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