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경남 통영 욕지도 출신으로 일본 명치대법학과를 수료하고 LA 한미신문 주필과 고문을 역임하시면서, <상고사의 새발견>과 <새가야사와 삼국열전>, <고려사의 새발견>을 쓰신 이중재(李重宰)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국가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 국가의 뿌리를 싱싱하게 하려면 역사를 바르게 세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신사상이며 뿌리다. 뿌리가 썩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로 역사교육이 흔들리는 한국은 부정과 부패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역사를 날조하는 일본은 망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배달민족의 영혼을 깨우는 것이고, 부정과 부패, 그리고 각종 비리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통과의례로 각종 자격을 받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영웅이 된 듯 착각하지 말자. 일본은 조상님들의 영혼을 모시려는 의지와 기억마저 박탈하여 저항의지를 말살하려고 1910년 전북 무주군 적상산성 안국사의 서고(書庫)를 비롯하여 전국의 책을 수거하여 왜곡하고 축소하고 책을 태워서 민족혼의 흔적을 말살하는 총독부의 만행에 일조를 했거나, 1914년 황석산성 전투장인 안의군이 파군을 당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추모제를 초등학교 운동회보다 못한 형식만 갖추어 역사적 무지를 노출하고 대첩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있다.요즘은 주자 성리학적 신분의식이 세탁도 되기 전에 주자 성리학에 비견되는 계급이 수시로 만들어진다. 그것도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을 때의 일이지만 부정행위나 표절로 자격을 취득한 얼이 빠진 사람도 있다. 그것에 더하여 자신이 식민사관의 열등감에 빠진 줄도 모르고 진실보다는 오만한 코스프레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1555년 12월 남명 조식의 단성 현감 사직소에서 무지랭이 백성을 깨우쳐 백성 스스로가 백성을 지키도록 하는 서양보다 23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만인평등 百姓主導防衛戰略과 이겨놓고 싸우는 先勝求戰 이순신의 전술을 연구해야 한다. 공복(公僕)이라고 하지만 공공자원의 배분권력을 백성 중심이 아니라 본인 중심에 두는 것은 한없는 비리에 노출되는 것이다. 자격을 획득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올바른 역사에 대한 교육 부재는 자기 자신과 국가를 외면하는 것으로 성리학보다 폐해가 더 심각하다.전국이라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최소한 경남에서만이라도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황석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자 성리학을 해탈한 남명의 백성 중심 사상! 거창 좌수 유명개가 <종들과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말도 같이 섞었던 만인평등의 생활, 즉 교육>을 실천했던 남명의 단성 현감 사직소의 백성 주도 방위 전략을 연구하고 발표하고 다짐하면 공공 비리는 자동으로 척결된다.오늘날도 수백 수십 년 된 낡은 지도나 책 한 권을 수십억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유럽의 암시장에서 밀거래를 하고 있다. 까짓 역사책 한 권, 지도 한 장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국가가 깊숙이 개입하고 어떤 자는 훔치고 어떤 자는 숨기는 스릴 넘치는 전쟁을 하고 있을까? 상대방의 전투 의지를 꺾는 멸족 전쟁은 가장 손쉬운 일이지만, 저항 의지의 말살은 2000년의 세월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1190m 황석산에서 노약자, 부녀자, 농민들이 일본 정규군 75,300명을 궤멸시킨 조상님들이 내리는 위대한 훈장은 누가 받겠는가? 화살도 떨어지고 물을 끓일 화목도 떨어지고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성벽을 뜯어 던졌지만,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칠천 조상님들의 음덕과 황석산의 청정한 억센 정기를 어떻게 후손에게 전할 것인가? 황석산을 방문하여 거창현, 안음현, 함양군이 동등하게 지키라고 명령했던 체찰사 이원익도 기록하지 않고, 유성룡의 징비록도 이순신의 백의종군 때 합천에 같이 주둔했던 권율 장군도 기록하지 않은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비를 세우고자 한다. 오직 근무 중 순직한 지족당 박명부만 기록한 황석산성 실적! “後日 太史氏 長大之 一助”에 영혼을 바치겠다는 떨리는 몸으로 응답을 하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비 건립 후원 계좌: 농협 351-1346-3997-63 황석 역사 연구소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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