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일지라도 고흐만큼이나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리는 대상은 사람이나 물체가 아니라 빛과 대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며 빛을 찾아 화구를 들고 야외로 나갔다. 당시 파리 미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인상주의’라는 사조의 탄생을 알린 화가이다. 훗날 모네는 지베르니의 저택과 주위의 너른 땅을 사서 정원을 가꾸면서 수련 연작(1914-1926)을 그리는데 말년을 바쳤다. 수련 연작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둥근 벽을 따라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모네는 겨울 경치를 사랑했다. 140여점의 설경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까치’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모네는 노르망디의 에트르타 지역 해안 마을을 좋아해서 자주 들르면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이 그림을 그린 겨울에는 특히나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자. 낮게 가라앉은 하늘 아래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돌담을 기준으로 화면은 수평으로 나뉜다. 돌담 아래 공간은 전경이고 담 위 부분은 배경이 되는 셈이다. 담 바로 뒤는 참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집 한 채가 있다. 왼쪽 나무대문 위에는 까치가 한 마리 앉아 있다. 화면의 모든 물상들은 듬뿍 내린 눈으로 두텁게 덮여있다.
온 천지가 흰색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한 순백은 아니다. 모네의 벗이었던 르누아르는 “자연에 순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 위에는 하늘이 있고, 하늘은 푸른색이다. 눈 위에 비치는 이 푸른색을 드러내야 한다”라고 했는데, 모네는 이런 생각을 실제로 그림에 표현해 내었다. 전체적으로 크림빛이 도는 흰색은 자세히 보면 회색이 감돌기도 하고 푸른빛, 보랏빛, 황갈색도 은은하게 드러나면서 설경에 깊이와 변화를 더한다. 특히 눈 위에 떨어지는 그림자의 색도 다양하다. 그래서 차갑다는 느낌보다 목화솜을 펼쳐놓은 듯한 포근한 느낌도 받는다. 실제로 눈은 빛을 반사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면서 흰색이 아니라 다양한 빛을 드러낸다고 한다. 하얀 풍경을 그리면서 모네는 햇살의 각도에 따라 눈의 음영으로 깊이 있는 색감을 포착해 빠른 붓질로 표현해낸 것이다.
폭설에 가깝게 내린 눈, 돌담에도 지붕에도 울타리에도 눈이 내려 쌓였지만 느낌은 따뜻하다. 아름답다. 눈을 지그시 감고 보면 햇빛 아래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듯해서, 겨울이 주는 삭막함보다 오히려 생기를 느낄 수 있다.
눈은 지상의 만물을 평등하게 덮는다. 저 멀리 들판도 길도 돌담도 나무도 집도 다 덮는다. 봄, 여름, 가을 내내 달려왔던 생명과 풍경도 덮는다. 지나온 흔적을 다 지워버리기라도 할 듯이. 그러나 눈 덮인 아래에서 만물은 다시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덮인 하얀 세상을 보면서 인생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꿈을 꾼다. 그래서 그림 제목이 ‘까치’이다.
나무 대문 위에 앉아 있는 까만 까치, 빛만 움직이는 고요하고 정적인 배경 속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모네는 혁신적인 화풍으로 화단에서 조롱받고 생활도 몹시 곤궁했다고 한다. 울타리 맨 위에서 고고하게 앉아있는 까치는 모네의 정신적인 분신이 아니었을까.
까치는 우리나라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사랑받는 새이다. 까치는 봄을 위해서 겨울에 둥지를 튼튼하게 짓는다고 한다.
2024년 올 한해, 어떤 이는 그런대로 행복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불행에 덜미를 잡혀 힘들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눈이 공평하게 세상을 덮듯이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다. 서로 토닥토닥 한 해 잘 마무리하면서, 겨울 뚫고 멀리서 오는 봄을 기다리자. 까치가 좋은 소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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