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장애가 있지만, 내가 가진 이 특별한 장애를 <선구불기증>이라 정의해 봅니다. 이 신조어의 뜻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합니다. “선천적으로 구제 불능인 기억 상실증”, 곧 사람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 결핍을 뜻합니다. 내가 이 증상을 처음 자각했던 건 오래전 도시에서 학원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30대 황금 시절이었지요. 상담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학부모께서 “우리 아이가…”로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얼굴은 분명 여러 번 본 익숙한 얼굴인데, 이분이 어느 아이의 어머니인지 머릿속에서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솔직하게 “누구 어머니시죠?”라고 물어볼 용기가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말투도 조심스러워지고 상담은 어딘가 겉돌기만 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학부모도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습니다. 이 증상이 귀농 후에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났습니다. 농장에 방문하신 손님이 “지난번에 곶감 사갔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라며 웃으시면, 나는 당황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웃기만 했습니다. 사실, 얼굴도, 사연도, 대화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SNS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같은 장애로 겪는 심경을 솔직히 고백하며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을 읽고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내가 혼자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 깨달음은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처음으로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솔직함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커밍아웃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기억이 잘 안나는 드문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이 낯익어도 기억나지 않을 때, “제가 선구불기증이 있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어디서 뵈었지요?”라고 물어보려 합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무례함이나 관심 부족이 아니라 단지 나의 작은 결핍임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게 알리면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주리라 기대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다가 “나도 혹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느꼈다면, 이 결핍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시길 추천합니다. 우리 모두의 작은 약점들이 오히려 세상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만 큰 대학병원에 가면 <선구불기증> 이라는 진료 과목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팔이 부러진 사람이 치료를 받듯, 기억을 방해하는 뇌의 한 부분을 치료하고(수술은 무서우니 간단한 약물 요법으로) 기억력이 회복되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어봅니다. 최근에도 거래 관계로 두 번째 만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해 다음에는 꼭 기억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세 번째 만남에서 또 기억을 못하는 바람에 상대방이 크게 실망하고 돌아선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분께 사과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결코 무례함이나 관심 부족이 아니니 네 번째 만남에서 또 기억을 못하면 웃으며 네 번째라고 힌트를 주시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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