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다니다 보면, 지역 간 편차를 느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똑같은 비수도권 지역인데, 유독 산업폐기물매립장·소각장, 의료폐기물소각장이 많이 들어온 지역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이다. 경북의 경우에는 의료폐기물소각장 3곳에서 경북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량의 7배 이상을 소각하고 있다. 수도권 등 외부의 의료폐기물이 경북으로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민간업체들은 의료폐기물소각장 신·증설을 경북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의료폐기물소각장 뿐만 아니라 산업폐기물 매립장·소각장도 경북에는 많은 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지를 추적해보면, 조례가 나온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각 시·도는 환경영향평가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조례를 제정하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을 넓힐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적인 기준으로는 하루 100톤 이상 소각을 하는 소각장만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라면, 조례를 통해 그 기준을 하루 50톤으로 낮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7개 시·도 중에 환경영향평가조례가 제정된 곳도 있고, 아예 제정이 되지 않은 곳도 있다. 경북은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곳이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할 부담이 적은 곳을 찾아서 사업을 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북에 의료·산업폐기물시설이 몰리고 있는 현상은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제정되어 있지 않은 것과 연관성이 있다.
환경영역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조례는 중요하다. 지금 전국의 농촌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민수당도 조례를 통해서 도입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액수가 1년에 60-80만원 정도 수준이지만, 농민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또한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과거 학교급식조례를 통해서 무상급식, 친환경급식이 정착된 것도 조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지방재정도 어려워지고 있으므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 및 집행과 관련된 조례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지역 간 편차가 상당하다. 주민참여예산 조례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제정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 제각각이다. 형식적인 위원회 정도만 운영하는 곳도 있고, 제대로 된 주민참여예산을 해 보려고 노력하는 곳도 있다.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54조의2 제6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주민감시기구를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감시기구를 구성하도록 조례가 되어 있고,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그런 내용이 조례에 없다.
주민자치회와 관련해서도 지역 간 편차가 크다. 어떤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곳은 주민자치회 조례를 제정해서 주민자치회로 전환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 실시 32년이 되면서, 각 지역의 조례 간에 차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좋은 조례를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의 ‘좋은 삶’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조례로 다루는 영역도 미흡하나마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주민이라면 조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주민들이 많아지고 힘을 모은다면,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례를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년에게, 노인에게, 여성에게, 청소년에게, 노동자에게, 농민에게 도움이 되는 조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조례가 갖는 한계도 있다. 대한민국의 조례는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제정할 수 있다. 조례가 국회가 만든 법률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시행령(대통령령)뿐만 아니라 각 부처가 만드는 시행규칙에도 구속이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방의회도 대의기관인데, 의회가 만든 조례가 각 부처의 시행규칙에 제약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법률에서 허용 또는 위임하는 조례제정범위도 훨씬 넓어질 필요가 있다. 특별자치를 하는 지역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조례제정권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런 제도적인 한계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중앙집권적인 엘리트 집단은 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법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도 결국 풀뿌리의 힘이다.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조례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날 때 조례제정권을 넓히는 제도개혁도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