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태어나 함양을 떠나 있었던 1년을 제외하면 사십년 이상을 함양숙(宿) 함양식(食) 하며 살았다. 굵직굵직한 명승지가 우리 지역에 있어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너무 익숙하고 친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설레는 마음이 적은 탓일 수도 있다. 주관적인 로컬여행을 기획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함양숙(宿) 함양식(食)’이었다. 함양에서 자고 함양에서 먹되 공정여행을 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가까이 있지만 숨어있는 함양의 맛과 쉴 곳을 ‘함양숙(宿) 함양식(食)’을 통해 함양사람이 직접 소개하고자 한다.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함양숙(宿) 함양식(食)’으로 회복하길 바란다.우리나라 속담에는 음식에 관한 것이 많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밥이 보약이다, 시장이 반찬이다. 국수 잘하는 사람이 수제비 못하랴 등등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인 의식주 중에서도 식(食)에 대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요즘은 티비를 틀면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 난다. 그래서 일까 여러 매체에서 공개된 레시피로 인해 직접 음식을 해먹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다. 올여름은 진짜 너무너무 뜨거웠다. 그러다보니 식사 시간이 되면 냉면집, 밀면집, 콩국수집, 국수집이 웨이팅을 해야 먹을 수 있었다. 야외에서 일을 하는 직업 특성상 가끔 점심 한 끼 정도는 사먹기도 하는데 8월 한 달은 정말이지 불앞에서 음식을 하기 싫을 정도로 가마솥 더위의 연속이었다. 더위에 탈나지 않고 무사히 여름을 넘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내가 먹었던 음식에 있다. 정말이지 음식이 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식사 약속을 잡을 때 뭐먹을까?로 시작하여 대화의 물꼬를 틀다보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싸고 맛있는 집으로 가요” 옛날에는 이런 말이 통했을지 몰라도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싸고 맛있는 집은 없어요. 제값을 주고 맛있는 걸 드세요” 이 말을 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 함양에는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여 가성비 끝판왕인 함양食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밥이 들어간다 술술술 만월식당 보리밥   만월식당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격표를 보고서 많이 놀란다. 더러는 사장님 손을 붙잡고 사정하는 분도 있다. “아이고 사장님 이 가격 받아서 남는거 있어요? 요즘 물가도 엄청 올랐는데 가격을 조금 올려 받으세요. 그래야 사먹는 우리도 덜 미안하지요” ““야채값이 고기값보다 더 비싼 장마철에 이렇게 많이 주면 사장님은 뭐 먹꼬 삽니까?” 이런 말을 건네는 손님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만월식당이다. 나는 식사약속을 만월식당 보리밥으로 많이 잡는 편이다. 처음 식당을 방문하는 이들도 나중에는 단골이 되어 자기들의 지인들을 데리고 밥 먹으러 간다. 내가 만월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밥도 맛있지만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이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룽지 끓인 물도 주는데 보리밥 먹기 전이나 먹고 나서도 한 사발 들이키고 나면 커피 생각이 1도 안날만큼 깔끔 담백한 식사가 된다. 이집 사장님은 항상 먹는 사람 입장에서 음식을 하는 것 같다. 먹어보면 사장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고맙고 감사하다. 갓 담근 열무김치와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등의 김치를 번갈아 가며 식탁에 올린다. 집에서 직접 만든 된장으로 끓여낸 강된장이 예술인데 보리밥에 이 강된장을 두어 숟가락 넣고 슥슥 비비다 보면 입안에서 난리가 난다. 대충 비벼서 입으로 가져가기가 바쁘다. 구수한 보리밥과 가끔 직접 농사지은 야채를 올려 주는 때에는 이 강된장과 어우러져 밥이 달디 달다. 숟가락을 멈출 수 없이 계속 먹게 된다. 보리밥을 비벼 먹다가 목 축이라고 시원한 물김치도 항상 내 주신다. 슴슴하게 끓인 국물 한 숟갈 먹고 물김치 한 숟갈 먹고 그러다보면 감쪽같이 그 많던 밥이 사라져 버린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내입에서 침샘이 폭발하고 있다. 소식좌인 사람들도 이집을 가게 되면 한 그릇 뚝딱이다. 여름에 입맛이 없는 분들도 만월식당 보리밥은 술술 넘어간다며 하루걸러 한 번씩 오는 분도 있었고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 식사만 줄곧 해 오던 분이 그렇게 병원에서도 만월식당의 보리밥이 그리웠다라고 고백하기도 하더라. 웃으며 밥을 먹으러 들어 왔다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간 일은 나에게도 있었다. 서울살이 하는 친한 친구가 휴가철에 함양 친정집을 왔었다. 죽마고우인 나를 만나 밥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해서 만월식당 주소를 줘 버렸다. 친구는 나에게 좀 더 비싸고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했는데 나에게 선택권을 줘서 그냥 보리밥으로 메뉴를 정해 버렸다. 보리밥 두 그릇을 사이에 두고 남편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하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주문하지도 않은 물 국수 한 그릇이 나왔다. “사장님 저희는 물 국수는 안 시켰는데요?” 혹시나 식당 홀에 아는 분이 시켜 줬나 해서 둘러봐도 내가 아는 분은 없었다. “서울에서 온 분이 다음에 와서는 국수 시켜 먹는다고 하길래 오늘 온 김에 맛보라고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고객만족을 넘어서 고객감동을 실현하는 마인드로 음식을 하니 음식 맛이 좋을 수밖에... 국수 한 젓가락을 먹던 친구는 “와 오랜만에 맛있는 국수를 먹어 보네. 부드러운 멸치 육수가 옛날 시골에서 할머니가 해 주던 그 맛이야. 국수 위에 올려진 야채 고명들도 싱싱하고 맛있네. 오늘 안 먹고 갔으면 어쩔뻔 했니 은아야” “천만명이 사는 서울특별시에는 사람수 만큼이나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건데 너도 나이 들었나보다. 흐흐흐”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특별한 DNA가 있어서일까 나이가 들면서 예전 음식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반찬 가지 수가 많고 휘황찬란한 것보다는 이제는 소박한 밥상을 찾게 된다. 사업 수완이 좋은 친구는 서울에서 만월식당 2호점을 차리면 대박날꺼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여기 함양에 있어서 더 맛있는 거라고 응수해 줬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녀가 육십 칠십이 넘어도 항상 전화하면 밥먹었니?부터 물어 본다. 오죽 했으면 밥이 보약이다 라는 말까지 했을까? 올 여름 더위로 힘든 나에게 만월식당의 보리밥이 나의 보약이었다. 보리밥 한 그릇 가지고 그러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번아웃이 와서 힘든 시기에 나의 치료제 역할을 밥 한 그릇이 해 주었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성장해 간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준 친구같은 보리밥 한 그릇을 당신의 점심메뉴로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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