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TalkTalk 80회 차마 유자를 놓지 못하다 ▲ 유자나무유자의 계절이다. 유자는 그 향이 깊고 그윽하여 시월상달에 지내는 시제의 상에도 오르는 과일이었으며. 너무 귀한 과일이라 연산군 같은 임금을 만나면 유자 진상 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도망을 쳐야 할 만큼 백성을 괴롭히던 과일이 또한 유자였다. 중양절 이후 궁에서는 진상된 유자로 화채를 만드는 일로 수라간 상궁들과 나인들이 바빴다고 한다. 유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 네 쪽으로 갈라 속에 든 알맹이는 빼내고 껍질을 가늘게 채 썰어 꿀물에 배와 함께 띄우고 석류와 잣을 띄워서 만드는 것으로. 반나절쯤 두었다가 유자의 맛이 충분히 우러나오면 먹을 수 있는데 코를 자극하는 유자의 향기에 석류와 잣이 보석처럼 떠있으므로 향이나 맛에 더하여 보는 즐거움마저 좋은 음식이 바로 유자화채이다. 얼마나 귀하고 맛이 좋았으면 궁에서 임금이 먹기 전에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하던 유일한 화채였으며. 또한 남쪽에서 귤과 함께 유자가 올라오면 그것을 기념하여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과거시험을 보았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유자설기그렇게 귀했던 유지지만 저장이 잘 되지 않았기에 유자청을 만들어 두었다가 한여름이 되어 물에 타서 먹는 것으로 ‘유자장’이라는 음료가 있었다. 유자껍질을 저며서 꿀이나 설탕에 재워두면 유자청이라 불리는 유자의 즙이 우러나오는데 이 맑은 유자청을 병에 저장해 두었다가 더운 여름에 갈증을 없애거나 체했거나 설사가 날 때 이용한 것이다. 조상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자를 한방에서는 등자(橙子)라 부른다. 맛이 시며 성질은 평화로우며 폐의 기운을 돕는 과일이다. <본초강목>에는 유자를 먹으면 답답한 기운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였으며 <동의보감>에도 유자는 그 맛이 달고 무독한 과일로서 뼈 중의 나쁜 기운을 제거해주고. 주독을 풀며 음주 후의 입 냄새를 좋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자는 비타민 C와 P. 유기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뚜렷한 효과가 있다. 함유되어 있는 플라보노이드계의 색소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하여 출혈을 방지하고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 유자차즙을 짜내고 남은 유자껍질을 그물망이나 천주머니에 넣어서 목욕할 때 욕조에 넣으면 피로가 풀리며. 겨울철에 손발이 트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유 없이 피부가 가려운 피부소양증 환자라면 유자로 목욕을 한 다음 가려운 곳에 유자를 대고 가볍게 문지르면 피부가 촉촉해져서 가려움이 해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유자라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신맛에 의해 이와 뼈에 손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체하여 속이 답답하거나 위산이 많은 사람들은 조심해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유자의 신맛은 자칫 변비를 유발할 수 있으니 또한 조심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유자에 대한 재미있는 속담이 하나 나오는데. 탕평책을 썼던 영조가 ‘비록 성에서 떨어져도 손안의 유자를 차마 놓지 못한다.’고 하면서 신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기가 속한 당을 놓지 않으려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유자가 얼마나 귀하고 좋았으면 성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자기 죽을 것을 무릅쓰고 손안의 유자를 놓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지만 작금의 세태에도 적용되는 속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ggum23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