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리교회 목사 김정형어느 날 대학교에 다니는 사랑하는 딸이 방학을 맞이하여 부산에서 함양으로 다니러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학 3년생인 딸이 심각하게 하는 말이 “아빠가 엄마보다 먼저 죽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새엄마는 허용이 되는데 새 아빠는 허용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혼자되어도 씩씩하게 살 것 같은데 아빠는 그렇지 않게 생각된다는 것이었다.충격을 받았다. 아마 딸이 장녀이다보니 나름대로 미래를 돌아보고 심각하게 내린 결론인 것 같다. 지금까지 아빠로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빈틈없이 살려고 했어도 딸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빠의 사랑이 짙으니 새엄마는 질투의 대상이 되어서 용납이 안되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의 눈에는 같은 부모라도 조금 연약하게 아빠의 모습이 비친 것이었다.미국 독립선언서의 시작이 “모든 남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때만 해도 여자는 수의 개념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가 평등하게 창조 되었다”라고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이다.흔히 우리가 말할 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분명 잘못된 말이다.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 부모가 다르다. 건강도 다르다. 지능도 다르다. 달란트(재능)도 다르다. 그래서 부모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기도 한다.그런데 누구나 평등한 것이 있다. “죽음”이다. 인간은 어차피 한번은 죽어야 한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어떤 사람이든지 죽는다는 의미에서 우리 인간 모두는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독립선언서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철학적으로 생각할 때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요즘 웰빙(well being) 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더 중요한 말은 웰 다잉(well dying). 잘 죽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죽는다는 말이 하나밖에 없지만 독일어는 죽는다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동물의 죽음을 가리킬 때 '페어웬덴'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사람이 죽었을 때는 '스페르벤'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니까 '개가 죽었다 소가 죽었다'고 할 때는 '페어웬덴'이라고 하고. 사람이 죽었을 때는 '스페르벤'이라고 하는 것이다.우리의 몸에 이상이 생겨 병이 나면 병원에 치료를 받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치료가 안 되면 결국 죽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동물적 죽음 즉. 육체적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어 가면 이 사람을 어떻게 살릴까 육신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하지 그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놀라운 것은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우리의 육체가 죽어가는 순간에 우리의 영혼. 정신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의학적인 죽음. 육신의 죽음만 생각하지 말고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준비할 때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다. 아침에 마을 이장님의 방송이 들린다. "오늘 ...댁에 ...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발인은 언제 하겠으니 문상 가실 분들은 마을 회관으로 몇 시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아∼ 아 오늘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떠난 분의 생은 아름다운 삶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