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도의원 문정섭지금부터 60여년전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에 한동안 버짐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매일 머리를 감지 않았기 때문에 곰팡이균에 의한 지루성 피부염의 일종인 버짐이 한번 머리에 생기면 장기간 지속되어 결국 머리 여기저기에 흉터(운동장)가 생겨나곤 했다. 필자도 이러한 경험을 겪었고 당시 생긴 머리흉터는 훗날 없어졌지만 지금은 대머리가 되어버렸다.당시 초등학교는 한 반에 50∼60명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였고 거의 절반 가량이 버짐이 생겼다. 하루는 담임선생님께서 버짐이 있는 애들은 교실의 북쪽으로 배치시키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남쪽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여 격리를 시킬 정도로 사정이 심각했었다.여름철 소나기로 개울에 황토수가 흘러내리던 날. 필자의 집에서 산판(산에서 목재 제재를 하던 곳)에 다니던 기사 분이 딱한 사정을 알고 배터리 용액(살이 타는 황산)을 머리에 발라 보라는 것이었다. 이때 부모님은 필자의 머리 환부가 있는 자리에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헝겊으로 용액을 바르는데 아뿔사! 필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용액을 바르도록 한 기사 분에게 욕을 하면서 소나기가 내리는 개울로 뛰어가 머리를 감아 보았지만 아픔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당시 농촌에서 유일한 상비약이란 산초기름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도정공장에서 흘려보낸 폐유를 바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버짐은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고 소나 염소한데도 생겨 가축의 사양관리에 애를 먹었는데. 한번은 집에서 사육하던 중소 한 마리에 버짐이 생겨 결국 소는 죽고 말았다.이때 군에 신고가 되어졌고 보상금 3만원이 지급된다고 하면서 죽은 소는 새파란 잉크 물을 부어 매몰 처분했다. 후일 알고 보니 아랫마을 사람들이 파묻은 소를 다시 파내 먹었다고 들었다. 이때만 해도 설이나 추석에도 소고기 맛을 볼 수 없을 시기였기에 이해가 되었다.요즘은 좋은 약이 많아 피부에 도장 버짐이 생겨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손과 발을 1년에 2번 정도 씻을 시기였으니 머리인들 자주 감지 않아 버짐이 생겨났을 거라는 옛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