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순 논설위원입동이 지났다. 이맘때면 마을마다 감을 깎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모습을 보게 된다. 추수를 끝내 놓은 뒤 여유로운 시간에 감을 따고 깎아서 처마 밑에 줄줄이 매달아 놓은 모습은 풍족한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 시간표와 같다.곶감은 우리의 어릴적 정서와 맞물려 있다. 동화에 나오듯 우는 아이를 달래 주기도 했고. 널따란 마당에 앉아 일일이 감을 깎아 감 가지에 줄을 몇 번 칭칭 감으며 한 줄에 10개 이상 매달아 놓았다. 그러면 햇살도 받고 바람도 맞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곶감형태로 되어갔지만 어린 마음에 빨리 먹고 싶어 꾹꾹 눌러보고 한 두 개씩 똑 떼서 먹기도 했는데. 그 때 먹던 반곶감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추억이 새록새록하다.함양곶감이 조선시대 최고의 우수한 생산지였음은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종직 선생의 문집인 점필재집 9권의 내용에 보면 시를 통해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어 감의 맛을 팔능의 진미와 감나무 가지가지마다 매달린 감은 새끼용의 알에 비유함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감생산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 선생이 오늘날 마천면을 드나들면서 빼곡하게 집집마다 감나무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지은 것으로 함양곶감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함양군은 함양곶감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곶감 특화사업을 추진해 온 결과 2004년 5억원에 불과했던 생산량이 올해엔 350억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다각적인 지원과 연구의 결과로 우리나라 최대의 곶감명산지임을 확인하고 명성 찾기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 FTA. WTO 등 세계무역의 개방화 물결에도 지리산 함양곶감이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리 잡아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이렇게 함양곶감의 연차적인 소득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관공서와 민간의 단결된 합작품으로 보여진다. 농가참여 확대를 위해 영농교육을 통한 곶감생산 기술지도와 감나무 전지작업을 실시하고 지역특화사업비를 지원하여 생산기반시설을 구축정비하였다. 또한 예냉고. 덕시설 등 시설지원과 제품규격 출하를 위한 포장재를 제작하고 고급화시켰으며. 자체 묘포장을 설치하여 우량묘목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함양군에 따르면 농가참여의 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함양곶감의 명성회복에는 몇 가지 풀어야 할 난제가 있다. 첫째 철저한 교육을 통한 함양군 전체의 곶감생산 규격화가 필요하고 약간의 차이가 있는 품질의 고급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원료감 부족으로 청도. 상주. 영동 등 외지에서 구입하는 원료감을 각 면 단위마다 따로 구입하는 현 상황에서 싼 원료감 확보를 위한 통일된 창구가 필요하다. 셋째 함양곶감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포장재의 디자인과 박스 규격화를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고종황제가 뛰어난 맛에 탄복해 고종시(高宗柹)로 명명됐다고 전해지는 함양곶감은 ‘지리적표시등록 임산물 제39호’로 되어 있다. 고종시 곶감의 원료감 묘목을 매년 2만 그루 이상 식재하여 2017년이 되면 함양군 자체의 원료감만으로도 품질 높은 함양곶감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참으로 가슴 벅차고 희망이 보이는 함양곶감의 위상이다.함양을 방문하고 돌아간 기자가 글을 쓰길 함양엔 감은 보이지 않는데 곶감은 많더라고 한 적이 있는데. 머지않아 감나무도 넘쳐나고 곶감도 풍년을 이루는 곶감마을이 주렁주렁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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