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새벽은 유난히 바빴다. 아마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1박 2일 지리산 등산을 준비하는 안의고등학교 1.2학년 때문이었으리라. 김밥 챙기랴. 짐 챙기랴 정신없이 움직이다 부랴부랴 6시 50분쯤 우리는 천왕봉. 혹은 지리산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8시를 좀 넘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부주의로 출발시간이 지체되어 여학생들이 타야할 셔틀버스 운행시간을 놓쳐버렸다. 결국 여학생들도 산을 오르기로 했다. 출발에 앞서 우리는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등산의 의의를 말씀하셨다. 핵심은 정신력이었고. 우리도 교장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적군과 마주한 체 서있는 그 긴장감으로 등산을 하기로 다짐하였다. 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려. 우리는 우비를 입고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는 성제를 조장으로 2학년은 태길이. 성용이. 택수. 1학년은 민찬이 성일이 영웅이로 되어있었는데 다시 한 번 우리는 각오를 다졌다. 우리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하자고. 우리는 뒤쳐져서 놓치지 말자고. 하는 그런 다짐이었다. 정은호 선생님과 동욱이를 필두로 우리는 조금씩 나아갔다. 맨 처음 나온 갈림길에서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옆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고행길의 시작점인 줄도 모른 채 그냥 웃으며 다시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끼를 뒤집어 쓴 바위같이 지리산의 비에 젖은 디딤돌들은 하나같이 호락호락하게 발받침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금세 남자 그룹과 여자+선생님 그룹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남자 조 중 4조가 뒤쳐져서 후에 물어보니 선생님들을 돕는다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선두 그룹 꼬리부분이었던 우리 3조는 초반에는 잘 따라갔다. 허나. 시간이 갈수록 뒤처지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2학년생은 산을 자주 가서 잘 오를 줄 알았건만 성용이가 점차 창백해져갔다. 1학년 영웅이가 좀 힘들어 할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 씩씩한 민찬이가 골골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3조는 결국 뒤처지고. 선두그룹에서 뒤처지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도 받았다. 그러다 쉼터와 포토존(photo zone)에서 망바위를 발견했다. 2학년에게는 낯설지 않은 바위이다. 그래도 역시 그 모습은 씩씩하고 멋있었다. 2학년이 이런데 하물며 처음 와보는 영웅이. 성일이. 민찬이는 어떻겠는가. 잠시 쉬긴 했으나 이미 무거워진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민찬이가 준비한 오이를 성제. 영웅이. 성용이. 민찬이가 나눠 먹었는데 그 맛은 마치 오이를 먹을 때마다 꿀이 나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1.2조와 거리차가 제법 생겼다. 조장이었던 성제는 약간 다급해졌는지 아까보단 친구들을 더욱 자극했다. 체력이 좋던 성일. 태길. 택수는 조금 먼저 올려 보냈다. 나머지 남은 우리 조는 서로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고 간식도 먹어가며 올라갔다. 오르다 보니. 위쪽 조에서 “성제. 성제. 성제”하고 불렀다. 그래서 좀 다급히 올라가 보니 좀 어리둥절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1.2조가 좌우로 서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나 나올법한 길을 터서 돌선생님 앞으로 우리 조를 인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법계사까지 우리 3조가 선두가 되었다. 우리가 못 오르긴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 건. 우리 뒤에 쫓아오는 조원들은 뒤처지지 않았다는 걸 보고부터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안경에 김까지 끼는 고행길 속에 2학년들이 사진을 찍었던 법계사 앞 공터가 보였다. 우리는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2학년들은 올 초 눈 덮인 법계사를 떠올렸을 것이고 1학년은 비 내리는 법계사의 장엄한 모습을 상상했을 테다. 법계사. 1450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절. 하늘과 마주 닿아 마치 구름이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예술적인 절. 544년부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그 절에 우리 3조는 한발 더 다가섰다. 법계사 앞에 졸졸 흐르는 약수를 떠 마시며 지리산의 정기도 함께 마신 우리 조였다. 그 중 민찬이가 자기도 힘들 텐데 선배들 물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니 내심 기특해서 칭찬하고 싶었단다. 드디어 마주친 1450m 법계사 입구 돌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입구에서 사진 한 컷 찍었다. 그렇게 우리는 법계사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법계사 사이사이로 구름의 증기들이 스쳐지나가고 목탁소리와 불경소리가 법계사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또. 샘에서 새어나오는 맑은 물을 마시고 고개를 돌리니 바늘 위의 풍선같이 위태위태한 듯 바위가 삼층석탑과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진흥왕 5년부터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것 같은 석탑을 배경으로 고마운 어느 아저씨의 도움에 의해 사진도 찍었다. 성일이와 성제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서로 웃긴 포즈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다. 그리고 내려오는 도중 택수가 입구사진이 지워졌다고 해서 다시 찍기로 하고 내려가는데 촐랑대던 성제가 결국 미끄러져 넘어졌다. 한바탕 웃고선 쪽팔린다며 안 간다고 하다가 내려왔다. 바로 밑 안내소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떡(?)같은 것을 주셔서 감사한다는 인사를 드리고 맛있게 먹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눠 주시는 모습에서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우리는 정을 나눠 먹고 내려와 다시 입구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가장 먼저 법계사까지의 일정을 마친 우리 조는 나머지 조들이 올 때까지 잠깐 짬이 났었다. 이 시간 동안 올라오면서 소모한 칼로리를 출발 전 나눠주셨던 빵 등으로 채우고 바닥난 물통을 채워 넣기도 했다. 내가 받은 빵. 네가 받은 빵 모두 달라서 서로 빵을 공유하며 먹여주며 우애 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에도 역시 성일이와 성제는 뛰어다니며 코믹사진을 찍기 바빴다. 또한 다른 조 친구들과도 뭉쳐 앉아서 올라오면서 있었던 일 들을 듣기도 했다. 곧 후발 그룹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는 올라오는 친구들의 초췌한 모습이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특히 교장선생님의 패션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흡사 일식집 사장님을 연상케 하는 두건과 앞치마처럼 둘러맨 우비가 그 모습을 대표했다. 30분쯤 쉬었을까 우리는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2km가 남았다고 알리는 표지판. 남은 거리를 알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설레는 것은 표지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조원들 얼굴에 스며든 흥분감이 우리를 막아서는 추위마저 잊게 하였다. 올라가면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풍. 땅보다 먼저 붉은 정장으로 차려입은 단풍나무들. 구름의 바다에 뜬 산을 붉은 파도로 물들인 듯하였다. 아름다운 단풍에 빠져 걷다가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부턴가 원인모를 악취가 퍼져 나왔다. 우리끼리 장난으로 그냥 누가 똥을 쌌다느니 하기도 했지만 그 악취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냥 냄새가 나면 나는 대로 그저 장난거리로 삼으며 적응해 나갈 뿐이었다. 남은 거리 2km는 생각보다 급한 경사가 아니었다. 이제껏 올라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룰루랄라. 우리는 소풍이라 느낄 정도의 편안함을 누렸다. 살짝 속도도 내 보고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점점 불안함도 쌓여갔다. 아마도 그것은 산길 곳곳에 배치된 안내표지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경고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테다. 가파른 경사가 지속되어 심장 질환 발병률이 높다는 것이다. 한 300m정도 남았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이유는? 급경사가 시작되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전달하는 의미에서였다. 역시 경사는 점점 가팔라져 300m는 300km처럼 느껴졌고 바닥도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올라갔다. 삐걱 삐걱 비명을 지르는 낡은 철계단은 미끄러워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런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바라보았던 것은 이미 우리를 공포를 초월하게 해주었다. 운해(雲海)는 넓게 펼쳐져 마치 목하 솜이 흐드러지게 펼쳐진 듯 했다. 그 모습은 안락하고 포근해 보여 뛰어내려도 우리를 보살펴 안아줄 것만 같았다. 어느새 정상과는 겨우 몇 발작. 우리는 투박하고 부정확하지만 굳센 발걸음을 놓아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허리를 피며 깊은 한숨을 내뱉고 신선한 공기를 다시 충전했다. 그리고선 내려다본 아랫길. 어질어질 할만큼 아찔한 경사였다. 그 경사를 네발로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반려동물이 생각났다. 그리고 둘러본 주위의 풍경은 감히 비유하자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베어진 대나무와 그곳까지 날아드는 작은 새와 곤충들은 천국을 노니는 모습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도착하셔서 우리는 드디어 천왕봉 그 끝자락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순간 오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힘내라는 말이 떠오르며 감사한 마음이 가슴 한 켠 자리 잡았다. 살을 베어버릴 듯이 불어오는 차가운 칼바람이 우리를 더욱 싸매게 했지만 달성했다는 기쁨에 휩싸인 감격만큼은 식히지 못했다. 그러나. 태길이는 내심 기대에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쪽저쪽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반대 건너 쪽으로 넘어가니 우리 남학생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널따란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깃발을 세우고 술을 따라서 지리산 산신께 제를 올렸다.   내년에 또 그 다음 해에 학생들이 원하는 큰 뜻 이룰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와 노력을 함께 주시옵고 그 뜻 이루는 기쁨! 천지신명과 지리산 산신령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학생들을 도와 그 꿈을 실현시켜줄 교사들에게도 건강과 개개인의 소망 이룰 수 있도록 하오시고 여기 모인 모두가 내일까지 겪을 아름다운 체험 원만하게 마칠 수 있도록 굽어 살피시옵소서!  <<지리산 극기체험 축문 中>>  산신께 수능 대박. 화해 등 우리 조 저마다의 바람을 담아서 무릎 꿇어 산신께 보냈다. 다리는 힘이 풀려 후들거리고 매서운 바람에 이빨까지 달달 떨려왔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온기를 유지했다. 그리곤 이내 도시락을 까먹었다. 김밥을 두 줄씩 챙겨왔지만 많을 거라는 예상과는 어긋나게 김밥은 부족했고 허기진 뱃속은 어느 새 남의 밥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역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나보다. 입으로 넣었는지 코로 넣었는지도 모르게 먹은 점심을 먹자 우리는 배고픔보다는 추위에 달달 떨었다. 그 모습을 돌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우리를 모아 어깨동무를 시키시곤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셨다. 구호 생략하는 부분을 자꾸 틀려서 거의 100번 정도 했던 것 같다. 하고나니 다리가 오징어마냥 휘청거려서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도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어떻게 내려가라고!!!”하고 말이다. 불평을 뒤로하고 우리는 지리산 등정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 플랜카드를 몸에 감싸서 추위를 막아보겠다고 발악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플랜카드 하나에 초췌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찍은 사진이지만 제법 잘 나온 것 같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아마 1. 2학년이 이렇게 사진을 찍은 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산을 올라오면서 우리는 서로 모르게 조금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산의 마력이라는 것일까. 우리의 시선은 점점 하산길을 향해 나아갔다. 아까 열 낸다고 다리를 혹사시켜서 그런지 하산길은 막막했다. 백무동까지 갈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처음엔 조를 지켜 내려갔다. 가다보니 드는 생각에 하산길이 발디딤이 더 불안정해서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 개인 페이스에 맞춰 내려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떨어지게 되었다. 길은 완전 돌밖에 없었고 미끄러움은 절정에 달했다. 민찬이는 내심 여학생 친구들이 올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민찬이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민찬이는 본인이 자처해서 여학생들을 돕겠다며 뒤에 오기로 했다.우리는 민찬이를 믿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갔다. 하산길이었지만 오르막길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성제는 등산인지 하산인지 모르겠다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대피소를 거의 도착했을 때였을까. 우리는 구상나무들이 시들어 죽어있는 길을 지났다. 성제는 이런 모습을 영화에서나 봤을 것 같다면서 이런 곳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로 정말 이 길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무풍지대에 가깝고 주위는 탁 트였으며 무릎높이의 풀들이 살랑거리며 시들어 띄엄띄엄 자란 구상나무들은 묘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어린 구상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세히 살펴보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지나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서 우리는 5.8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을 보고는 한숨이 나왔다. 3시가 넘었건만... 시간이 촉박했다. 잠시 쉬고는 출발했다. 성일이는 아직 체력이 남았는지 맨 앞에서 자유롭게 내려가고 있었다. 태길이나 택수. 성용이도 하산길이라 그런지 힘들 텐데도 제법 잘 따라왔다. 길은 완만해졌지만 걷고 걸어도 0.4km씩 주는 거리는 야속하기만 했다. 돌선생님을 선두로 한 그룹도 점점 속력을 내어 여학생들이 있는 그룹과는 점점 멀어졌다. 전화는 잘 터지지도 않고 사람들 간의 소통은 바로 옆 사람이 아니면 점점 없어졌다. 그렇게 내려오길 6시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남은 길은 3km가 조금 안 된다. 멤버끼리 전화도 해 봤으나 전화는 불통이여서 소용없었다. 산의 해는 금방 진다. 그래서 6시 30분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해가 져서 위험하다. 선두그룹의 사람들은 핸드 랜턴을 가지러 백무동 숙소까지 뛰어 내려갔다. 가는 길은 험하디 험해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6시 30분쯤 선두그룹이 숙소에 닿았다. 우리 조에서 성일이와 성제가 그 중에 있었는데 선두그룹과 함께 랜턴을 들고 늦는 사람들의 가방을 들어주려고 다시 뛰어 올라왔다. 올라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날이 어두워져 눈앞에 검은 장막을 깔아놓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더 빨리 뛰어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위에는 다리가 풀린 사람이나 그 자리에 발이 묶인 사람도 있었다. 한 그룹에 랜턴 든 사람 하나 가방 드는 사람 한명씩 붙어 천천히 내려왔다. 1시간이 넘도록 내려왔다. 다 내려오니 조난신고를 받고 올라오는 구조대원의 차량을 보고는 모두 식겁을 했다고 한다. 또 관리소 아저씨의 “수고했어. 다음에 또 와”하는 농담 아닌 농담은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박수를 받으며 들어온 숙소 앞에 서서 교장선생님께서 수고했다며 격려하는 말씀을 하셨다.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 촉박해서 내려오는 길의 모습은 잘 보지 못해 아쉬웠다. 여유가 있었다면 보다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체 텅 빈 배를 채우기 위해 밥부터 먹었다. 목숨을 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보람찬 일을 해서 그런지 밥은 쑥쑥 넘어가고 맛은 초코케이크처럼 맛있었다. 오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만족감 때문이었을까. 아쉬움도 남지만 후회 없는 산행이 되어서 좋았다. 우리 조 저마다의 머릿속에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깊이 박힌 것 같았다. 성제는 또한 자신을 포함하여 힘들어도 재촉하는 말에도 짜증도 안내고 인내하여 올라온 것에 대해 고맙고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내심 말없는 영웅이와 택수가 아직 조에 녹아들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도 했었다. 여학생은 3층에. 남학생은 1층에 방을 배정받았는데 우리 방이 좁지 않을까하고 사실 조금 불평을 했었다. 역시 불평은 태길이가 제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불평이란 것이 익숙하기도 하고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1학년이 자신들이 2층을 쓸 테니 1층을 2학년이 쓰자고 제안해서 별 달리 자리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재빨리 방으로 튀어 들어와 들어온 사람 순으로 샤워를 했다. 몸은 개운하고 속박되는 것도 없고 숙소도 멋있고 지금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니겠냐며 바닥에 누웠다. 우리는 1학년. 2학년 할 것 없이 모여 앉아서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곧 돌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남학생 여학생을 모아 한 꾸중을 하시기도 했으나 듣고 보니 옳은 말씀이셔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사실 오늘 2학년의 리더쉽이 부족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앞으로 학교의 계획을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로 칭찬도 하셨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교장선생님은 엄청난 능력자이신 것 같다. 이런 시골학교도 점점 변화시켜 가시니 말이다. 우리 3조는 다시 쫙 모여서 돌선생님께서 주신 퀴즈를 풀었다. 문제가 제법 어려웠다. 그 와중에 학부모님들이 주신 통닭 두 마리와 피자 한 판은 정말 감사했다. 여러모로 감사한 점만 늘어난다. 우리는 통닭과 피자를 먹으며 나름 작전을 짰다. 스마트 폰을 이용하는 상대팀을 이기기 위해 염탐을 한다거나 스마트폰을 빌리거나 머리를 쓰거나 이렇게 체계적으로 나눴다. 성제와 성일이 태길이가 문제를 머리로 풀고. 민찬이가 스마트 폰을 빌려와 주었고. 택수와 성용이 영웅이도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결국 꼴등으로 문제지를 제출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낱말 퍼즐이었다. 이건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서 재빨리 끝났다. 역시 요즘 기계는 남다르다. 그리고 나선 다시 남.여가 다시 모여 퀴즈 맞추기 시합을 했다. 조별로 진행되었다. 이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민찬이와 태길이. 성일이. 성제가 계속해서 답을 던졌으나 하나도 맞추지는 못하였다. 결국 문제는 못 맞췄지만 과자는 두어개 챙겼다. 그래도 웃음이라도 준 것이 내심 기뻤다. 그렇게 일정은 새벽 1시에 끝났다. 그래도 아쉬워서 우리는 방에 모여서 갖가지 이야기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2시까지 웃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래도 역시 몸이 못 이겨서 푹 쓰러져 자버렸다. 부스럭 소리에 잠에서 깨니 이미 아침은 시작되었다. 움직이려고 하니 우리 조원들은 하나같이 다리를 잡고 할아버지가 되어서 나왔다. 싱크대고 뭐고 물만 나오면 세수를 하고 우리는 빨리 나와서 밥부터 먹었다. 아침밥으로 나온 국은 일류급으로 맛있었다. 피곤한 몸까지 회복되는 듯 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성제가 정종규 선생님께 종이를 받아와 체험기를 메모 했다. 그리고 안의. 함양 버스를 나눠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간략히 메모했다.지리산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서로 뭉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손을 잡아주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산행을 인솔하여 솔선수범 해주신 교장선생님 외 일곱 분의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분들 덕분에 학창시절에 많은 학생들과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 1916m를 올랐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간 말의 왕래가 거의 없었던 선후배 간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려버렸다. 성제는 반장 이후로 조장을 하면서 이번만큼 책임감을 크게 느끼긴 처음이라면서 자신을 누르는 부담감을 제어하는 힘을 조금은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한다. 택수와 영웅이 성용이는 말은 없어도 서로의 책임감을 느끼며 미안해했겠지만. 괜찮다고 마음속으로나마 위로해본다. 또한 아침부터 끝까지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그 중요성. 앞으로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산행 후 다리와 어깨 등 온 몸에 근육이 뭉쳐버렸다. 아마도 그 고통만큼 근육이 풀릴 때까지는 적어도 우리의 깨달음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이번 지리산체험활동에 참여 하신 모두 분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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