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도의원 문정섭가을이다. 들녘을 거닐다 황금색 들판에 피사리가 너무 많은 논을 바라보다 말고 지난 시절 피발취 등 일손돕기에 대한 형태를 적어본다.요즘의 일손돕기는 기계화 영농으로 지난 2년간 우리군 농가소득 6∼7위에서 금년도에 4위(250억원)로 껑충 뛰어오른 양파수확을 비롯하여 과수(사과 배 감등)의 꽃순 솎기와 적과 (열매속기)와 수확 등에 일손을 돕고 있지만 이는 숙련공이 되어야 가능하며 아무나 할 수가 없고 초보자는 농가에서 싫어한다.이외에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와 폭우. 비바람에 쓰러진 벼 세우기. 한해대책 및 수해응급복구 등에 공무원을 비롯하여 새마을 및 적십자단체 등이 직간접으로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돕고 있는 일은 우리 농촌의 오래된 관행이요. 미담이기도 하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일손돕기 형태는 다양했다. 보리 직파 후 논 흙더미를 깨서 종자를 덮어 주던 작업은 요즘 골프와도 같은 일이었다. 다수확을 위해 광파된(넓게 파종) 보리포기를 옮기고 서릿발이 솟아오르면 이를 밟아 주던 일손돕기에는 초·중·고등학생들이 모두가 동원이 되기도 했다. 보리의 수확과 탈곡. 그리고 모내기와 피발취 수확 및 탈곡 등은 연중 행사였다.그리고 한해나 수해 시 다단계 물대기와 응급복구 등이 매년 반복되다보니 국도변 위주가 되었고 VIP라도 행차하는 날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작업을 100% 완료해야 했다.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되던 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나간다고 백전. 병곡. 지곡. 수동면 고속도로 주변 가시권에 벼락 모내기를 했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2002년 태풍 루사 때 우리군 마천면 내마마을에서는 당시 8명의 인명피해가 있었어. 고 노무현대통령과 정동영 최고의원이 이곳을 방문했었다. 마침 필자도 일손돕기차 현장에 있다가 이들과 평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는 전 기관단체 임직원들이 참여하여 침수된 가재 도구를 씻고. 장판 교체 및 도배. 그릇세척과 소독을 매일 했다.필자는 집에서 새 김치를 담아 현장에 가서 배부를 했더니. 이 또한 최고의 인기를 얻어 지금도 일부주민들이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한다.요즘의 일손돕기는 여기에 국한하지 않고 딸기 따기 및 밤줍기 체험봉사와 야간 곶감깎기 외 서해안 태안반도 기름유출시 전국에서 기름띠 제거 일손 돕기를 한 적도 있다.한편 우리 군에서는 도·농간 자매결연을 실시. 도시인들이 우리고장을 찾아 농번기에 일손을 돕고 대가로 우리농산물을 싼값에 공급해주는 시책은 앞으로도 계속 활성화가 되어야겠다.일손돕기에 참가했다가 농땡이 치다가 징계를 먹기도 하고. 높은 어른 오는 길목에서 눈 도장 찍어 출세한 여담도 있다. 요즘은 지역간 주 소득 농·특산물이 서로 다르고. 수확기가 일정치 않아 우리군 양파의 경우. 인근 전라도 주민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으며 인삼의 경우. 금산에서 버스를 대절해 숙련공들이 수확을 해주고 있다. 반면 인근 남원지역 감자캐기 등을 우리도 돕고 있다.이처럼 세월이 지나다 보니 우리네 농촌일손돕기 형태도 자꾸만 변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