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13비가 온다. 봄비가 온다. 봄비는 소리 없이 온다. 여인의 흐느낌처럼 순정으로 내리니 마음이 젖지 않을 수 없다. 사나흘 내리는 비에 나무마다 물이 올랐다. 나무의 새순들이 추웠던 겨울의 산에 순록의 옷을 입히고 있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이럴 때 벌써 코를 벌름거린다. 비 내음을 맡을 줄 안다. 비 내음 속에 섞여 간간이 실려 오는 산 속의 풀향기를 코끝에서 알싸하니 맡는다. 그 내음은 싱그럽고 청순하고 비릿하고 야릇하기도 하다. 그 내음을 맡을 줄 아는 사람은 자연을 깨우친 자연의 사람이다. 오늘날 현대의 생활 속에서 자연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시골에 고향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빗속에 실려 오는 산골의 고향 내음을 안다. 사월 봄장마. 잠시의 우기가 끝나고 오월에 접어들면 산은 신록으로 변한다. 신록이 아니라 순록이다.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흰색도 검은 색도 아니다. 순록의 색이다. 연초록이다. 세상에 처음으로 고개를 내미는 나무의 새순. 새순의 얼굴들이 지닌 색깔이야말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색이다. 산허리를 타고 하루가 다르게 은근히 번져 가는 파스텔 톤의 연초록 행진. 산의 아름다움은 이때이다. 이때쯤이면 권훈근(49세)씨는 가볍게 몸을 풀고 한겨울 걸어 놓았던 망태를 꺼내 따스한 양지에서 손질을 하고 배낭을 꺼내 기본 물품을 정비한다. 그는 국경 없는 숲 속의 방랑자이다. 산약초를 캐어 먹고사는 민초이다. 물오른 산의 약초들은 봄날에 그 효능이 높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봄의 풀들은 가장 순수한 물을 지니고 있기에 약초의 성분이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의 모든 풀이 다 약초지요. 약초가 따로 있는 것은 아녜요. 우리 주변에 흔히 보는 민들레 쑥부쟁이 쑥 질경이 돌나물 냉이 비름 다래 미나리 취 곰취 단풍취 다 우리 몸에 한없이 좋은 약초지요. 나무의 새순만 해도 두릅순 뽕잎 오가피순 가죽나무순 두릅 참두릅 옻순 칡순 다 좋은 약초지요. 인삼만 좋겠어요? 도라지 더덕 산양삼. 장뇌삼이 다 인삼만큼 좋은 삼이지요”겨우 사정사정하여 하루를 같이 동행하기로 허락 받았다. 어느 산에 어느 약초가 많고 어느 골짜기 어는 바위 밑 어느 계곡 곁에 가면 어떤 산약초가 자라고 있는지 그물코를 꿰듯 훤히 꿰고 있는 약초꾼이 평생 알아낸 본초강목의 서식지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경 없는 숲속의 방랑자는 흔쾌히 하루의 동행을 약속했다. 산을 오르며 묻는다. “지리산 함양에는 이렇게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많지요. 지리산 덕유산 자체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좋은 산약초가 많아요. 그러니 약초를 캐러 전국에서 꾼들이 많이 몰려들어요. 함양 근처에 약초 캐며 사는 사람이 한 100여명 정도 될까 싶네요. 하지만 진짜 꾼은 한 20∼30명쯤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산에 오르면 산에 남아나는 게 없겠는데요” “맞아요. 옛날에는 산약초꾼들은 산을 사랑하는 진정한 자연주의자였어요. 산을 좋아해서 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까 산약초를 보게 되고 그들은 산약초를 캐는 것이 아니라 산약초를 지켰어요. 물론 어떤 사람이 중병에 고통을 받는다면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만의 약초를 캐 병을 고치게 하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게 문제라니요.?“원래 산은 임자가 없어요.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니고 나무를 심은 것도 아니고 물을 주고 기른 것도 아니지요. 다 자연 그대로 저희들이 자란 거예요. 그래서 산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뿐이지요. 지금의 산약초꾼들은 인간의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에 좋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 한 뿌리에 수천만원 수백만원 가리지 않으니 목숨 걸고 캐러 다니는 것이지요. 약술을 담아 팔기 위해 보이는 대로 캐지요. 등산객들도 등산은 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산을 다 파헤치지요. 상황버섯이고 송이버섯이고 석이버섯 남아나는 게 없지요. 우리 같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로 보존하느라 고생입니다”전국에는 약초꾼 모임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전유성과 홍명도 이상철 부부가 10년전부터 시작한 장뇌삼 농심마니회가 있다. 이들은 매년 전국 산마을을 찾아다니며 멸종해 가는 산삼 장뇌삼을 우려하여 종자씨를 뿌리는 행사를 전개해 왔다. “문선생님이 사는 함양 산양삼 동네도 산삼 자라기는 아주 좋은 최적지이지요. 병곡 대봉산 기슭에서 한번 행사 할 수 있도록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함양은 산양삼의 동네다. 전체 면적의 78%가 산지이고 게르마늄 토양인 함양은 햇볕도 잘 들고 산세도 높고 골짜기도 깊어 산삼이나 각종 약초가 자라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함양군은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2003년부터 250억원을 들여 450농가에서 650ha에 산양삼을 심어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5년에는 1천 농가에서 2억 포기를 기르는 산양삼의 고장으로 도약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수출하는 벤츠기업의 중심지를 꿈꾸고 있다. 7월이면 제8회 함양산삼축제가 열린다. 산약초꾼 권훈근씨가 다시 중요한 말을 한다. “옛날에는 산을 오르기 전에 약초꾼은 먼저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씻습니다. 그리고 산에 들기 전에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산신제를 드립니다. 이것은 우리 약초꾼들이 선배 약초꾼들로부터 말없이 배워온 하나의 의례입니다. 이 의례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과의 인사인 것입니다. 저희들이 산에 오르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야 산과 산신령이 놀라지 않고 받아 드립니다. 그래야 아무 탈 없이 산에 올랐다 내려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짐승에 의하여 험한 바위에 의하여 썩은 나무뿌리에 의하여 뱀에 의하여 그 외 알지 못할 자연에 의하여 그 사람은 다치게 됩니다. 이건 미신이 아니라 다 자연의 섭리요 자연의 인사법입니다. 자연에의 외경(畏敬)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래야 산삼도 보이고 능이버섯도 보이고 송이버섯도 보입니다” 그럼 79년 한국영화 걸작선으로 인기를 끌었던 ‘심봤다!’를 한편 감상해보자.감독 : 정진우 출연 : 이대근. 유지인. 황해온보는 심산에서 산삼. 약초를 캐는 심마니다. 심마니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온보의 유일한 소망은 오래 묵은 산삼을 캐는 것이다. 이윽고 산삼을 캐기 알맞은 계절을 맞아 심마니들은 떼를 지어 산속으로 들어간다. 온보는 다른 동료를 앞질러 험한 바위나 덤불 속을 헤치며 산삼을 찾아 헤맨다. 어느 날 온보는 별안간 눈에 광채를 띄며 “심봤다”를 외친다. 5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산삼을 캔 것이다. 이제 심마니 마을에서 부자가 된 온보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게 되지만 한편으로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온보가 값나가는 산삼을 캤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를 싸게 사들이려는 한약방 주인을 비롯해 건달패. 땅꾼 패거리들이 온보를 에워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온보는 산삼을 뺏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가족을 데리고 깊은 산 속으로 숨어버린다.몇 년 전 마천의 한 아주머니가 몇십 년 된 산삼 16뿌리를 한 자리에서 캐어 화재가 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뿌리혹으로 번져 나간 가족삼인데 1억6천만원에 팔렸다고 하니 심봤다 노다지를 발견한 것임에 틀림없다. 지리산 주변에는 권훈근씨처럼 약초 캐는 민초들이 곳곳 마을에 많이 산다. 마천 백무동 칠선계곡 두지터 촉동 문정 병곡 백전 서상 서하에 가서 마을사람들에게 물으면 누가 약초를 캐는지 가르쳐 준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은 한의사 자격증만 없지 민간의학의 선도자들이다. 무슨 병 어디 아픈데는 어떤 약초가 좋은지 귀신같이 안다. 책에도 나오지 않지만 그들은 구전에 구전으로 전해온 비법을 알고 있어 또 순수 토종의 약재를 가지고 있어 꼭 아픈 사람에게는 구하여 준다. 그들은 약초값을 잘 받지 않는다. 돈 내고 사온 것이 아니라 산이 주어서 가져 온 것이기 때문에 약초값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형편대로 수고한 값을 생각하여 주면 된다고 한다. 그들은 아픈 사람이 소문으로 들어 찾아오거나 전화로 사정하면 그냥 약초를 준다. 아픈 사람이 사정하는데 어찌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 사람은 약초를 먹고 몸이 낫는다. 그 사람은 찾아와 고맙다고 하고 형편이 닿는 대로 약간의 사례를 하고 돌아간다. 그것으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아픈 사람이 낫다는 것만으로 약초꾼은 보람을 얻은 것이다.(권훈근☎019-575-8450) 어디를 가나 가짜 때문에 진짜는 그 가치를 잃는다. 중국에서 몰려오는 가짜 산약재가 시장을 어지럽힌다. 산삼의 뇌두까지 만들어내는 하우스 제품들. 상황. 영지. 산삼. 천마. 하수오. 산더덕. 산도라지... 산약초감정평가회가 있지만 그 마저 어떤 곳은 믿을 수 없는... 그래서 함양은 산양삼의 생산이력제를 도입했다. 국경 없는 숲속의 방랑자는 말한다. "산을 타는 기쁨의 첫째는 마음의 자유지요. 배낭을 메고 산 속에 혼자 들면 그 때부터 나는 산의 풀이되어요. 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짐승이 되고 산이 되고 숲이 되고 계곡의 물이 되어요. 나무 지팡이 하나 휘적이며 갈지자로 비스듬히 산비탈을 타다 배고프면 아무데나 앉아 싸 간 주먹밥에 된장 꺼내 놓고 주변에서 곰취나 단풍취 뜯어 싸먹으면 그 맛 최곱니다. 자연 그대로의 자유인이지요. 그 맛에 산에 다녀요”오월의 지리산은 푸르다. 산약초를 캐는 민초들은 오늘도 산에 든다. 그들은 무엇을 채취하러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간직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수도승으로 산에 든다. 생명을 키우며 안고 있는 지리산 어머니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기 위하여 숲에 든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은 산을 가까이 하라고 넌지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