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林에서/김윤세오는 4월23일(土)은 함양 고을로 들어와 36년간 머물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암. 난치병. 괴질환자들에게 재생(再生)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고 선계(仙界)로 떠난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 탄신 102주년 기념식이 함양읍 죽림리 1048-4 인산가 연수원에서 열리는 날이다. 1909년 음력 3월25일에 태어나 이듬해 한일합방이 되는 민족적 불운의 시대를 가시밭길 인생으로 살다가 광복이후에는 또다시 외세(外勢)를 등에 업고 진행된 근대화. 현대화라는 이름의 이념적 혼란기를 거치며 민족 고유의 혼(魂)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에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당시 “흉악한 산골”로 불리던 이곳 함양으로 들어온 때가 1956년 무렵이다.산판의 목물 일을 하고 여러 가지 막노동으로 고난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이따금 소문 듣고 찾아오는 암. 난치병. 괴질환자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인술(仁術)을 베풀며 초야에 묻혀 조용하게 살아가던 선생께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6년 6월부터이다. 당시 서울에서 1981년부터 모 신문사 편집부 기자로 일하던 필자가 매주 함양에 내려와 아버지 인산의 구술을 받아 ‘인산의학’의 독특한 의방(醫方)을 기사화하여 신문. 잡지 등에 게재하고 그것을 다시 모으고 정리하여 5년여의 작업 끝에 독창성과 특이성 등 여러 부면에서 동서고금(東西古今)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의서(醫書) <神藥>으로 완성해 1986년 6월 15일 출판한 뒤 6월 20일 “<신약(神藥)> 저자 인산 김일훈 선생 초청 특별강연회”를 서울 중학동 한국일보사에서 5백여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개최하면서부터 선생의 비교적 한가롭던 여생은 고난의 삶으로 바뀌었다.그 뒤 총 32차례의 건강강연이 이어졌고 입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할 ‘참 의료’를 찾아 함양으로 몰려드는 하루 2백여 명의 말기 암환자와 그 가족들로 인해 함양읍 운림리 10여 평 남짓한 초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아버지 인산의 강맥(講脈)을 이어 1993년부터 필자의 건강강연회 역시 18년간 2백여 회 이어지며 인산의학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형제들 중 누군가 지적한 바대로 필자는 당시 비교적 한가롭게 지내던 아버지의 만년(晩年)의 삶을 더없이 고달프게 만들어 주어진 수명. 즉 천수(天壽)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떠나시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대불효(大不孝)를 저지르게 되었지만 ‘인류 건강’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서 혼신(渾身)의 열정(熱情)을 다 바쳐 아버지 인산의 독창적 의방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수 없었던 나름대로의 소신(所信)이 작용했음을 첨언(添言)하지 않을 수 없다.오늘날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의료체계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생명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역방향으로 치닫는데다 심지어 지나친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더없이 소중한 인류의 생명을 효과적으로 구제해야 할 본래의 사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광복 직후부터 아버지 인산은 국민건강을 위해. 인류 건강을 위해. 국익(國益)을 위해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뿌리깊은 민족 전통의학의 장점과 과학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여러 부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서양의학의 장점을 통합시켜 새로운 한국적 의학을 정립하여 한국을 의료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그러나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 정부는 ‘과학기술의 뒷받침으로 눈부시게 발달한 의료체계를 도입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단순한 판단에 의해 이러한 민족진영의 제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서양의료를 국가의 중심의료체계로 삼아 국민의료법을 제정하고 의료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민족의학을 전멸시키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한의사와 양의사. 약사 등 의료집단간의 끊임없는 반목과 갈등을 자초하는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물론 한국의 의료가 단기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의료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성장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의료산업의 성장과는 무관하게 각종 암. 난치병. 괴질로 인한 사망률은 더욱 급증하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아버지 인산은 인체의 자연치유능력을 오히려 약화시켜 질병의 근본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인위 인공 조작 기술의 비 순리적. 비자연적 의료로 인해 머지않아 수많은 인명이 암. 난치병. 괴질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갈 것을 예견하고 자신의 독창적 의방의 의미와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오지중의 오지. 깊은 산속 함양으로 마침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周)나라의 쇠망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기 위해 5천여언의 도덕경(道德經)을 남긴 뒤 함양의 함곡관을 통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린 노자(老子) 이담(李聃)의 행적을 연상케 한다.‘인산의 날’에 즈음하여 생각해볼 것은 특정 의료방식만을 과신하여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제 자신의 몸 또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그저 믿고 전적으로 맡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순리와 자연의 더 높은 가치에 비추어 의료의 방향을 정하고 어떠한 무리(無理)도 없는 순리적 치병(治病)과 섭생(攝生)을 통해 심신(心身)의 정상(正常)을 자연스럽게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오랜 옛날부터 대대로 전해져온 뿌리깊은 민족전통의학의 핵심은 치병도 섭생도 순리와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되새겨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지 발행인.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