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미 함양군 기획감사실우리 엄마. 000여사. 1941년 신사생 뱀띠. 올해 나이 만 70세이신 우리 엄마는 아직도 마음은. 아니 몸까지 청춘(젊은이)일 수밖에 없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나는 따뜻한 엄마 밥 한끼가 그리울 때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엄마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착한 우리 엄마는 단 한번도 싫은 내색 않으시고 마치 요술을 부리듯 금방 따뜻한 밥상을 차려 안방까지 가져와 평소 아끼며 눕기도 아까워하는 고운 이부자리 위에 놓는다. 그러면 염치없는 딸은 또 온갖 수다를 떨며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른다. 엄마를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시골집에 홀로 계시는 엄마의 일상은 늘 단순하다. 아침밥을 드시고는 노모당에서 종일토록 보내시다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일상을 거부할 때가 있다. 바로 다름 아닌 몸이 피곤할 때이다. 나에게는 칠순의 엄마라 누군가를 보살피기보다는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모당에 나가면 온갖 잡다한 일을 다해야 한다고 하소연이시다. 그만큼 젊은(?)축에 속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가끔은. 단순한 일상을 거부하며 홀로 집에 계시는 경우가 있다.그런 엄마의 유일한 낙은 신문을 읽으시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내일의 운세’는 절대로 빼먹지 않는 코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운세를 보지 않으면 그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중독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물론. 심심풀이로 우리도 가끔 운세 코너를 보기는 하지만 그것을 100% 믿지는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항상 내일을 미리 알고 조심할 수 있도록 해줘서 많은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운세의 맹신자인 엄마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친절히 제공돼 오던 운세가 2011년이 되자 엄마의 운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41년생의 운세가 운세코너에서 쏘옥 빠져버린 것이다. 신문사 측에서는 정해진 지면에 일정코너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세에 관심을 갖기엔 조금 많은 나이라고 생각되는 70세 이상을 뺐을지도 모르겠다.몇날 며칠 어깨가 축 쳐져 보내시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지 운세 코너를 제공하는 00철학관에다 직접 전화를 하셨단다. 그래서는 한바탕 호통을 치셨다고 하신다. 왜 예고도 없이(한마디 말도 없이) 41년생 운세를 뺐느냐고...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꼭 그렇게 해야겠냐고.. 아니 아직은 노모당에 가도 젊은 축에 속하는데... 그랬더니 다행히 그 철학관측에서 엄마의 의견을 흔쾌히 수용하셨고. 신문사측과 상의해서 가능한 다음 호부터는 41년생 운세도 꼭 넣어드리겠다는 약속을 하셨단다.한참이 지난 후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우리 형제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못말리는 우리 엄마. 정말 대단하시다" 하면서 말이다. 그 후로는 나도 ‘내일의 운세’ 코너는 열심히 보게 되었고. 더불어 엄마의 운세도 살펴보면서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나이 70세. 우리사회에서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본다. 하지만 영양상태나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건강상태도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아직은 뒷방 마님으로 물러나 있고 싶지 않은 나이이다.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좀더 일하고 싶은 나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어른으로 있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엄마의 하소연... 운세에서 빠졌다는 단순한 서운함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 엄마같은. 아직은 마음만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은 내 주변의 우리 어른들이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작은 곳에서부터라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4월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