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서원(유사 정이상. 김태균)은 지난 3월22일 성생례. 제수감정 초헌관인사와 23일 새벽5시에 정경상 유도회장과 유림. 하동정씨 문원 지역민등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숭모제를 지냈다.초헌관 정환상 전농수산부 이사관. 아헌관 송명식 성균관 전인. 종헌관 하정운. 대축 노유연. 집례 박길남. 학생 정순민 전 함양향교 전교가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에 앞서 3월 5일 정기원회에서 서원발전을 위해 운영위원장에 정천상. 직월에 정기상유림이 선임 되었다. 월급은 없으며. 임기는 3년이다.본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다.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개암 강익선생을 중심으로 30여명의 선비들이 합심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지었다. 명종 21년(1566)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 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더 하여 모셨다. 따로 사당을 짓고 유호인과 정홍서를 모셨다가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1610년(광해군 2)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국가문화재 사적499호 지정되었다. 본서원은 강당중심 서원으로 앞쪽 강학공간을 뒤쪽 사우을 두어 전학후사 배치를 하고있다. 입구에서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풍영루를 들어서면 묘정비각(존도문) 우측에 연못. 유생의 숙소인 양정재와애련헌. 좌측에 연못. 유생의 숙소인 보인재와 영매헌. 고직사. 계생대를 가운데 명성당이 있다. 강학공간인 명성당은 전면4칸 건물로 좌상격인 거경제와 한단계 낮은 격인 집의제가 있으며 가운데 두 칸은 마루이며 나무에는 단청이 되어있고 꽃그림도 그려지고 남계서원의 편액은 둘로 나누어 걸었다 다시 뒤로 계단을 올라 내삼문에 들어서면 우측에 전사청 정면에 사우가 있다.이 서원은 연화부수형으로 덕유산에서 내려온 연화산이 힘을받아 연꽃잎이 떨어져 있는 형상으로 서원내 연못에 연꽃을 심어 향내를 피우고 이를 애련헌. 영매헌에서 음미한다. 꽃잎의 형상으로 불룩 불룩땅 형국은 우측 비탈에 잘 표현되어 있다. 물굽이형을 이룬 건물의 배치는 풍영루는 왼쪽에 명성당은 오른쪽에 사우 가는 계단길도 굽이굽이 내가 흐르는 수로. 사우는 왼쪽으로 지어 풍수의 의미를 더욱 느끼게 하는 곳이다.본서원은 함양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고 요람으로 서원문화 관광벨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무한히 발전되기를 모두의 바램이다.마장현 유교신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