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林에서/김윤세天壽 누리려면 ‘自然으로 돌아가라’'자연(自然)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人生)인데도 자연을 모르고 도리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연을 등진 채 부자연(不自然)의 무리(無理)한 삶을 살다가 자연계로부터 주어진 본래의 수명. 즉 천수(天壽)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비명(非命)에 가는 비운(悲運)의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에 내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어찌 보면 이는 제도 교육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자연’을 가르치지 않고 인위 인공 조작 기술 지식의 주입식 교육. 다시 말해 세뇌(洗腦)를 통해 마치 말을 길들이듯이 사람을 길들여온 결과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기타 조직의 구성원이기에 앞서 누구나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딛고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연계의 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 같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본질적 문제라 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과 만물의 어머니임에도 유독 인간만은 제 어머니를 모르는데다 오히려 어머니를 외면하고 등지고 괴롭히는 우(愚)를 범함으로써 그에 따른 대가를 받게 된다. 자연계는 1차 경고를 하고 또다시 2차 경고를 보낸 뒤 전혀 개전(改悛)의 정(情)이 보이지 않고 자기를 혁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도리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 무명(無明)의 행(行)에 대해 ‘꽃은 피고 이윽고 지듯이’ 무상(無常)의 처분을 내리게 된다. 모든 것이 덧없다는 불변의 진리(眞理)에 따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거쳐 소멸의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천하의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고 하겠다. 그 어머니를 터득하게 되면 그 아들을 알 수 있게 되고 그 아들을 알게 된 뒤에는 그 어머니를 지킬 수 있게 됨으로써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까지 위태로울 일이 없게 된다.(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歿身不殆-老子 道德經 제 52장)”BC 6세기경에 생존했던 노자의 이 가르침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격인 자연. 그리고 그 자연 속으로 놓인 소통의 통로인 도(道)를 인식하고 그 도를 좇아 자연에 순응하여 살 경우 이 세상에서 생애를 마치고 사라지는 날까지 위태로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자연스러운 삶. 이치에 부합하는 순리적 삶을 통해 질병 없는 세상. 재액(災厄)을 만나지 않는 신천지(新天地)에서 제게 주어진 수명을 온전하게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준다.중요한 것은. 우리 인류가 성현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자연계의 차원 높은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삶의 나침반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라고 하겠다. 제 삶의 훌륭한 이정표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더라도 관심 부족과 인식 부족. 성의 부족으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 채 무심히 지나치게 되고 더 나은 삶의 길을 찾으려는 간절한 노력 없이 데면데면 살아가는 자세로 인해 자기혁신은 고사하고 그릇된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자연으로 돌아가라(Retour a la nature)”는 명언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으로 제도권 교육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고 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으나 워낙 폭넓게 ‘산 공부’를 치열하게 함으로써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철학자. 교육학자. 음악가. 음악평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이성(理性)의 시대를 끝맺고 낭만주의를 탄생시킨 사상을 전개했는데 그의 개혁사상은 음악을 비롯한 여러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방식에도 지대한 변화를 일으킨 바 있다.‘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고 전제한 뒤 식물은 재배함으로써 자라고 인간은 교육을 함으로써 사람이 된다는 말로 참 교육의 바른 길을 제시했고 건강문제에 있어서도 의료 자연주의를 역설해 인류를 위한 ‘참 의료의 큰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일깨워준 바 있다. “나는 의사들이 우리를 위해 어떤 병을 치료해주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아주 치명적인 증세를 안겨다준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무력증. 소심함. 경솔한 맹신.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의사들은 인간의 육체를 치료하면서 그 대가로 인간의 용기를 죽여 버린다. 그들이 시체를 걷게 만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손에서 그런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북으로 덕유산. 남으로 지리산의 고산준령들로 에워싸다시피 한 청정지역 함양 거창 합천 산청고을에 살면서도 자연을 외면하거나 등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천수를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서라도 노자 도덕경과 장자크 루소의 자연주의가 이 시대의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본지 발행인/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