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석 목사 (금호교회)이런 글을 읽었다. ‘한 곤충학자가 개미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개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곳에 나무젓가락을 넣고 그곳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났을 경우 개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끄는 방법을 몰라 당황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불을 발견한 개미가 자신의 몸을 불 속으로 내던졌고 다음 개미들도 마찬가지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불꽃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개미의 몸을 이루고 있는 키틴질이 불에 타면서 불꽃을 줄이는 소화물질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희생에는 값진 열매가 뒤따르는 법입니다’.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개미에게도 이런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있다는 글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 3월1일 삼일만세운동 92주년을 맞이하여 삼일 운동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았다.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한 수는 202만 3089명이며 그중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된 자 5만2770명 이었다. 독립운동에 관한 한 시안을 살펴보아도 이렇게 희생한 사람들이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중에서 유관순과 같은 분들은 후 세대들이 늘 기리며 존경하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단 삼일운동 뿐만 아니라. 그 후로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국가적인 경제적인 자유와 부요함은 앞선 선배들의 희생의 터 위에서 얻어진 결심임을 깨닫게 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분들.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성장을 위하여 희생하고 수고한 앞선 분들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함께 많은 문화적 혜택과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희생의 역할은 비단 개미나 인간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이치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 24)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섬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생하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 28) ‘상하이 스캔들’ 이라는 상하이 총영사들과 중국 여성 덩씨가 연류된 불륜 및 기밀 유출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최고 대학을 나오고 최고의 과정을 걸으며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죄성과 함께 변화되지 않으면 미물인 개미보다도 못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봄이 왔다. 부지런한 분들은 벌써 퇴비를 밭에 깔아 밭심을 돋우고 있다. 수많은 씨앗들이 밭에 뿌려져 희생하므로 더 많은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또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희생할까를 생각해 보자. 희생이란 단어가 너무 고귀하고 무겁게 생각된다면 사람의 도리.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