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林에서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날들의 연속이어서 따뜻한 봄이 더욱 그립고 간절하기까지 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싶다. 백호대살(白虎大殺)의 해 경인년의 겨울은 그 이름값을 하느라 이 땅에서 350만 마리의 무고한 짐승들의 주검을 묻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신묘 년의 봄이 시작되어 남부지방에는 벌써 매화(梅花)와 동백. 유채꽃 등이 피어나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그 무섭던 겨울을 밀어내며 등장하는 봄의 따뜻한 마음은 얼었던 대지를 녹일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들의 닫힌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게 만든다. 혹한 속에서 언 땅에 뿌리를 박고 모진 풍상을 견디며 인고(忍苦)의 세월을 사느라 다시는 웃음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매화나무 가지 끝에서 매화는 코끝을 스치는 짙은 향내를 풍기며 더없이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힘들고 괴로운 속박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이어디 보통 일이겠는가?고삐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 바탕 달려볼 일이다한 번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어찌 우리의 영혼마저 뒤흔드는 그 짙은 매화 향내를 맡아볼 수 있겠는가塵勞逈脫事非常 緊把繩頭做一場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搏鼻香당(唐)나라 때의 선승(禪僧)으로 널리 알려진 황벽 희운(黃檗希運) 선사(?∼850)의 이 시는 중생들이 그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잊고 살게 마련인 제 본래면목의 참모습을 깨우쳐주기 위한 목적으로 읊은 선시(禪詩)이지만 종교와는 무관하게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의 인구(人口)에 즐겨 회자(膾炙)되는 명시(名詩)이기도 하다. 이 짤막한 선시로 인해 매화의 이미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아름다운 한편의 그림으로 그려지게 되었고 또한 짙은 향내를 흩뿌려 사람들의 심혼(心魂)을 뒤흔들게 되었다.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가 내리 한 30일 넘게 지속된 유례없는 한파(寒波) 속에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으며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 탓에 신묘년의 이번 봄은 더욱 반갑기도 하고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련과 고통의 세월-겨울을 겨우겨우 넘기며 힘겹게 보내고 나면 마침내 우리들을 맞아주는 것은 새 봄이고 그 봄은 우리들에게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파릇파릇한 연두 빛 새 싹과 연분홍으로 빛나는 온갖 꽃들의 미소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일깨워주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여주는 것이다.봄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오묘한 삶의 의미와 스스로 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귀 막고 눈감은 사람들. 마음의 장벽을 쌓고 그 안에 갇혀 바깥세상과 교감하려고 하지 않는 닫힌 가슴의 소유자들에게는 그저 겨울 다음의 봄날일 뿐이고 봄날은 별다른 의미도 없이. 덧없이 그럭저럭 흘러갈 뿐인 것이다.자연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러 가지 향내로 인해 세상은 온통 잔치 분위기이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에게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봄일 뿐이고 가슴을 열고 자연과 교감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년 맞는 봄이지만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는 봄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그래서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임을 늘 실감하면서 제 삶의 의미와 가치를 한껏 느끼고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다 제각각 생각이 다르겠지만 좀 더 훌륭한 삶을 살았던 성현(聖賢)들. 종교 성직자와 선사(禪師)들의 말과 글. 그들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벤치마킹할 경우 제 삶의 업그레이드를 실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한 편의 짧은 시구이지만 그 시에는 황벽선사의 치열한 구도정신과 철저한 깨달음이 스며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올 봄에 매화를 보거든 그저 꽃이려니 하는 싱거운 생각보다는 잠시라도 황벽선사의 그 치열했던 구도자적 정신으로 돌아가 인고(忍苦)의 삶에서 피워내는 매화의 아름다운 향내와 미소의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본지 발행인. 전주대학교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