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2안녕하세요 함양.오늘은 자식농사 짓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읍내를 다니다 보면 관청이나 학교 교문 앞에 혹은 산골 마을 입구나 회관 앞에 이런 플래카드를 종종 보게 됩니다. “경축! 000님의 사법고시 합격을 축하합니다. 00초등학교 총동창회 일동” 어디 사법고시뿐이랴. “비서관 승진을 축하합니다” “00기업 상무이사 승진을 축하합니다” 어디 승진뿐이랴. “KAIST 입학을 축하합니다” “서울대 합격을 축하합니다” “축구 국가대표 선발을 축하합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기쁜 가문의 영광이냐! 어쩌면 “우리 아이가 반장으로 뽑혔어요” “우리집 예삐가 아기 3마리나 순산했어요. 추카!” 하하하. 이런 플래카드도 바람에 휘날릴 날이 멀지 않았지요. 보십시오. “박형배님 ? 이은숙님 초등학교 학부모 되심을 축하합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학생 없는 폐교 직전 마을의 경사 플래카드입니까?사랑스런 함양.나는 얼마 전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문선생님. naver@한겨레신문.com에서 김연아를 쳐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김연아? 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에 대한 무슨 놀라운 기사라도 나왔나? 궁금하여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서울대생 5명 독도를 알리기 위해 세계를 가다’ 라는 신문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아하! 김연아는 동명이인인데 내가 친분 있게 지내는 로보캅 순경 아저씨 김종화 경위의 따님이었습니다. 그래요. 3년 전 이곳 함양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4명이나 합격시켰는데 군 단위 시골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 경사였지요. 그 중에 서울대 간호학과를 들어간 함양의 김연아 학생이 독도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다는 기사였습니다. 김 순경 나으리는 나에게 딸자랑 아들자랑(아들 김판수는 전북대 토목과 재학)을 하자니 그렇고.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어 문자 메시지를 그렇게 날렸던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이상하게 딸자식 자랑하거나 자기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하여 놀림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잘못된 악습의 하나가 아닐까요? 자식자랑 아내자랑 마음껏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자기 PR시대라고 하잖아요. 가만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그래서 팔불출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딱 나왔습니다. '팔불출(八不出)'이란 말은 다음과 같다. '팔불출'의 원래 뜻은 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만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온전하게 다 갖추지 못했다 해서 팔불용(八不用) 또는 팔불취(八不取)라고도 한다. 팔불출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좀 모자란'. '덜 떨어진'. '약간 덜된' 것을 의미한다. 팔불출이란 어휘는 인간의 홀로서기 계훈(誡訓)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그 첫째가 제 잘났다고 뽐내는 놈. 두번째가 마누라 자랑이고. 셋째가 자식 자랑이라고 한다. 네번째는 선조와 아비자랑을 일삼는 놈이고. 다섯째는 저보다 잘난 듯 싶은 형제 자랑이고. 여섯째는 어느 학교의 누구 후배라고 자랑하는 일이며. 일곱째는 제가 태어난 고장이 어디라고 우쭐해 하는 놈이라고 비꼬고 있다. 사람들은 팔불출이라는 원래 뜻이 본디 덜 떨어진 것을 비꼬아 만들어서 그런지 그 여덟 가지조차 하나를 덜 만들고 있다.▲ 안의중학교 서무과장으로 있는 유석균(사진)씨는 아들 종엽씨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에서 <예미원>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딸은 고대를 나와 어문학 박사로 단국대 교수를 하고 있다.어라? 이거 참! 이상하게 돼가네. 이렇게 악의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니. 자기자랑 자식자랑 아내자랑 선조자랑 형제자랑 학교자랑 고향자랑. 이게 뭐 모자란 사람의 행위가 됩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사는 기쁨이 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것을 죄악시 취급한다면 그건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하기야 그렇게 생각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요.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학벌도 없는데 누가 자식자랑 학교자랑 마누라자랑을 눈치코치 없이 한껏 늘어놓으면 좋게 보일 리 없지요.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자랑 그 자체가 아니라 분위기를 모르고 도를 넘는 우쭐과 교만과 허세라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함양에서 그래도 남들이 평가하고 부러워하는 자식농사를 잘 지은 집안이 어느 집안인가를 귀동냥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주위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몇몇 집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산죽염촌 김윤수 최은아씨 댁. 딸이 서울대. 아들이 민족사관고를 나와 미국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 들어간 명실공히 공부 잘하는 명문 집안이라고 소문 나 있었습니다. 두산마을 유정목씨의 딸이 하버드대 들어갔는가 하면 안의중학교 서무과장으로 있는 유석균씨 아들 유종엽씨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에서 <예미원>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딸은 고대를 나와 어문학 박사로 단국대 교수를 하고 있어 쟁쟁한 집안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습니다. 서상에는 김경수 검사를 둔 김종렬(전 진주교대학장) 교수댁을. 읍내에서는 하두현(하약국)씨와 하충식(창원한마음병원장)씨 등 하씨 집안 전체를 칭송했으며 수동은 경남행정부지사를 지내고 있는 임채호씨 댁. 지곡은 경찰서장을 지냈던 정씨 집안. 안의는 미국 KISS사 대표를 맡고 있는 장용진씨를. 안의 백전은 군 장성을 배출한 동네로. 수동 휴천은 판검사 동네로 뽑았습니다. 함양은 자식 잘된 케이스가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 줄이겠습니다. 자식농사를 잘 지은 여러 집들 중에서 유석균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비법을 묻자 부끄러워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우리 집은 별거 없어요. 자기들이 다 알아서 공부하고 컸지 부모가 무얼 가르쳤겠습니까? 다만 늘 그랬지요. 자기가 맡은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하라.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랬어요. 하나님께 감사 드릴 뿐이지요” 자식 키운 영광마저 자식과 하늘에 돌립니다. 다른 어떤 분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나는 가난해서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인기라. 그게 한이 되어 자식에게는 논밭 다 팔아 서울로 내쫓아 버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 내 아들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거라. 아. 내가 경로당이나 저 군청에 가면 아무도 나를 무시 못해. 내 아들이 저 높은 디 판검사인디 어떤 사람이...” 과연 자랑할 만 하였습니다. 어찌 자랑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집안에 판검사와 의사와 교육자 한 명씩은 두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집안은 잘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우렁이 농사법. 오리농사법. 직파법이니 하여 농사꾼 나름대로의 농사법에 기초하여 대풍 농사를 짓듯 자식농사도 비법이 있어 각기 다르게 자식을 키웁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 집 아이들은 이상하게 가만 놓아두는데도 공부를 잘해. 참 이상하지. 집에 가보면 집안 전체가 책. 장난감으로 정신이 없어. 치우지도 않고 여기저기 그대로 놓아두는 거야. 그 속에서 아이들은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 한다 하고 좋은 대학 들어갔다고 하니 기가 막히지” 아마 나몰라라 방치법으로 농사를 지은 모양입니다. 이렇게 자식농사가 잘된 집안 몇 몇을 찾아보면서 뭔가의 공통점을 몇 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공부는 부모가 이렇게 저렇게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건만 구비해주면 타고 난 자질 속에서 본인 스스로가 개척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옛날에는 가난한 집안 자식이 비교적 잘 되었지만 현대는 경제력을 갖춘 집안이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자식이 잘된 집은 비교적 자식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많았는데 이는 효가 모든 근원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농사를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짓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를 가져야 자식을 잘 키웠다고 생각지 않는 젊은 분들이 많아지고 있고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안의면 우전마을에 사는 Y씨입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학교가기를 원하면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 가기 싫다면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본인 자신이 결정하도록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부모인 내 인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가 인생을 선택하여 가도록 해야지요. 부모라고 강요할 권한은 없는 것이지요.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협조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자기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혹시 그건 방임 혹은 무책임 그런 게 아닐까요? 어린아이가 세상을 잘 모르는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꼭 정해진 공공교육을 받아야 만이 올바르게 커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것입니다. 몇몇 상위 클래스만 살아남는 우리나라 교육체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지요. 무서운 경쟁체제에 몰아넣기보단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니 가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가라. 참다운 인생을 발견하고 가치 있는 생애를 살아라. 이게 내가 바라는 기대입니다. 물론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기 자신이 선택하여 간 길이니까 실패한다 해도 그것도 의미 있는 인생길이니까요” 나는 호오! 감동하며 들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어떤 해에는 절에 가서 스님 밑에서 가르침을 배우며 동자노릇을 1∼2년 하다 오기도 했고. 차비만 달라고 하여 집을 나가 1년 지나 집에 돌아 왔는데 부산 게임장에서 생활하고 왔다고 합니다. 이제는 다시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동남아 지역에 가 봉사의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한답니다. 남이 걷지 않는 새 인생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함양에는 일반 학교 체제와는 다른 녹색대학이 있고 산청엔 간디학교라고 하여 지리산고등학교가 있는데 정규학교와는 조금 다른 자율 대안학교인데 수능성적이 전국 상위이며 서울 유명대학에 거의 다 들어갔다고 보도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가 살면서 제일 바라는 게 무엇일까요? 자신은 비록 흙을 파고 밭을 갈며 농사꾼으로 평생을 허리띠 조이며 살더라도 자식이 높은 사람이 되어 칭송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 자식농사 정말 잘 지었더구만” 부러워하는 자식의 칭송을 듣는다면 내일 죽더라도 여한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나는 공주사범대학을 나와 첫 발령을 받고 고등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 동네방네 다 다니며 “우리 셋째가 저-기 글씨 고등학교 선상님이 되었다는구만! 교육 공무원인가 뭔간디 나중에 교감 교장이 된다고 하네!” 어머니는 며칠 몇날 온 동네를 다니며 아들 자랑을 한 것입니다. 고향집에 왔을 때 동네 아줌마에게 인사하니 “얘가 그 선상됐다는 그 셋짼가?” 어머니는 침도 마르지 않고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인사시켰습니다. 아! 이 얼마나 난감하고 부끄러워 얼굴 들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선생도 벼슬이 되는가? 아버지는 더 하셨습니다. 시골집에 가면 간혹 보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우리 딸자식이 대학 나올 때 찍은 학사모 쓴 사진을 5명이나(사위. 며느리 포함) 액자에 넣어 한쪽 벽에 한가득 나란히 훈장처럼 걸어놓은 것입니다. “아버지이- 이건 너무 심하신 거-” “예끼놈. 이게 뭐 잘못된 거냐? 자식이 다 대학 나와 기념으로 걸어 놓은 건데 죄진 것도 아니고...”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자식을 자랑하고 싶었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자 충효의 고장입니다. 함양 IC를 빠져 나올 때 “충효의 고장 함양”이라고 새겨진 천년석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활짝 펴고 함양읍내에 진입합니다. 보아라. 나는 이런 고장에 살고 있다. 자랑스런 함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