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희수 목사나는 지난 2003년 봄부터 그 후로 3. 4년 동안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된 적이 있다. 어릴 적부터 고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기라면 거들떠보지 않는 베지테리안이 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 나는 아이의 학교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된 것이다. 이 사소한 일이 나를 전혀 거리가 멀었던 채식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자연주의자이며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헬렌 니어링여사가 쓴 요리책이다. 이 분은 요리에 취미가 없기에 요리하는 시간에 조금 더 산책을 즐기고. 요리하는 시간을 아껴서 책을 읽고. 요리하는 시간을 줄여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요리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간편한 요리를 개발한 요리책을 쓰셨다는 것이다. 아. 이것은 진실로 나를 위한 책이었다. 나와 너무나도 똑같은 소망을 가지신 여성이 있다니...... 이렇게 훌륭한 분에게 나를 빗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그 소망만은 진실로 똑같았기에 나는 큰 기쁨으로 요리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의 기대와 달리 그저 요리제목과 재료와 방법을 적어놓은 요리책이 아니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에 관련된 이분의 깊은 생각이 집약된 철학교과서였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극적인 양념을 하지 않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라’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한 요리책이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저자는 9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이 분은 책을 통해서 직접 재배한 유기 농산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 생명을 존중하며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천명했다. 그 소박함이 본질과 맞닿아 있는 이 책으로 인해 나는 먹을거리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그저 맛있는 고기였던 음식이 살아 숨쉬는 생명이었고. 그것이 도살되는 과정을 생각하게 되자 저절로 고기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나의 지성과 영혼을 흔들어 삶에 변화를 일으킨 소중한 책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하여 7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가축들이 살처분 되거나 그대로 생매장이 되었다. 그들이 매몰되면서 부르짖는 그 절규소리는 매장을 끝낸 후에도 계속해서 들린다고 한다. 이 참혹하고 처참한 일들은 인간의 탐욕의 결과이다. 지금 당장은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지만 그 영향은 마치 호수 위에 동심원처럼 점점 더 커지면서 원인을 제공한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그 일을 감당하는 방역요원들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인 피로로 순직하는 사람도 있고. 자식처럼 돌본 소. 돼지를 생으로 끌어다 묻어버린 농부들의 가슴은 찢어진다. 두배. 세배 뛰어오르는 고기값에 장사하기 어려워지는 상인들.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연쇄적으로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 봄이 오면 곧 닥치게 될 환경오염문제는 또 다른 재앙이 되어 인간을 칠 것이다. 지난 1월27일 기독교 환경운동연대는 성명을 내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식탐으로 인한 육식위주의 식생활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는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창조질서를 보존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사소한 동기가 아닌 반드시 절실한 마음으로 소박한 밥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