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줄은 알았지만... 장바구니 채우기 힘들다단골에게 무턱대고 가격 올릴 수 없어 더 손해36년간 가계부를 써오며 대가족 살림을 꾸려온 구연분(함양읍 이은리)씨. 오늘 본 장거리를 내려놓자마자 작년 가계부를 펼쳐놓고 비교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기본 가격이 아예 작년과 차이가 났다. 콩나물은 천원치는 아예 팔지도 않아서 2천원치 사고 시금치도 기본 3천원부터 판다. 고추도 5천원 하던 것이 7천원으로 올랐지만 양은 작년보다 작다. 곶감도 최상품을 8만원에 살 수 있었는데 올해는 13만원 주고 샀다. 작년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품목별로 계산해 보니 23만원으로 해결되던 것이 올해는 33만원으로 10만원 초과됐다. 대부분 가격이 30∼50%로 올랐으며 많게는 100% 오른 것도 있다.여기저기서 가격이 올랐다. 비싸다. 양이 적다고 외치니 재래시장을 향하는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다. 설이 코앞이라 시장을 찾은 주민들이 많긴 하다.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하고. 물건을 꼼꼼히 살피는 주부들이 눈에 띄지만 막상 돈을 건네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몇 없다. 한파에 경기까지 얼어붙어 서민들의 가슴도 얼음장이다. 명색이 명절인데 자식들을 위해 넉넉하게 준비하려는 우리네 어머니의 지갑은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릴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한다. 지난 1월27일 취재진은 대목 장이 선 함양재래시장을 찾았다. 시장 입구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가 눈에 띈다. 아주머니 세분이 종이박스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집에서 농사지은 시금치. 무. 도라지 등을 펼쳐놓고 있다."밭이 얼어서 이제 시금치고 도라지고 캘 수가 없다. 중국산도 아니고 직접 농사지은 거니 사 가시오. 손님들이 모두 비싼 줄 알고 오니 흥정하기도 힘들다"할머니 앞에서 시금치를 사고 있던 김씨(두산마을. 57세). 20년 넘게 배 과수원을 해 왔지만 올해처럼 농사가 안된적도 없다. "날씨가 추워서 농사도 안됐고 저장성도 떨어져 배7.5㎏ 3만5천원에 팔았다. 택배비까지 포함한 가격인데 대형마트에 가보니 5∼6만원 하더라. 가격이 오른 것 뿐 아니라 유통마진도 무시 못한다. 작년엔 4만5천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일찍 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박정선(함양읍. 40세)씨. 박씨는 "설 준비는 시어머니가 하셔서 신경을 많이 안 썼다. 오늘은 집에서 먹을 장거리를 보러왔는데 고등어가 큰 것 3마리에 5천원 하던 걸 1만원에 받더라. 콩나물도 예전엔 아주머니가 손으로 쑥쑥 뽑아서 주셨는데 요즘엔 저울에 달아 줄 정도라고 하니 경기가 정말 많이 안 좋은 것 같다"며 하소연했다.시장을 들어서기도 전에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한숨이 나오긴 마찬가지다. 양옆으로 늘어선 상가에서 몰아닥치는 바람은 날씨 탓인지. 마음 탓인지 손끝을 더욱 아리게 한다. 때마침 시장안쪽에서 나오는 뜨끈한 연기가 눈길을 끈다. 즉석두부(사장 김동수) 가게 입구에는 방금 쪄내 김이 모락모락 하는 두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김동수씨는 6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올해 콩 값이 제일 비싼데다 손님도 줄어 매출이 갈수록 떨어진다고 한다. "콩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35㎏ 12만원이던 것이 지금은 24만원이다. 그래서 손두부 가격을 2천원에서 3천원으로 올렸다. 따지고 보면 한 모에 4천원은 받아야 맞지만 두부 가격을 두 배로 올리면 누가 사가겠나. 조금 덜 남기고 파는 수밖에 없다. 수입콩도 가격이 배로 올라 이래저래 손해가 많다" 두부 한 모를 4천원에 사갈 사람은 없다며 원료값이 올라도 단가를 맘대로 올릴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그래도 과일가게엔 손님이 제법 오간다. 지곡청과를 운영하는 김산옥(42세)씨. "설 대목이라 바쁠 것 같아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아들을 가게로 불렀다. 혼자서 하려면 배달도 있고 해서 힘드니까 일꾼이 한 명 필요한데 요즘처럼 어려울 때 인건비라도 아끼려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김씨가 과일장사를 한 지 8년이 돼 간다. 해마다 장사가 안되지만 올해는 과일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대목치고는 손님이 뜸한 편이다. 사과 15㎏ 10만원. 배 15㎏ 5∼7만원. 곶감은 한 접에 10만원에 판다. 하지만 올 손님들은 박스 가격은 묻지도 않는다. 제사상에 올릴 것만 사니까 낱개로 파는 경우가 많다.시장바구니를 딸에게 들리고 앞장세워 바쁘게 걷고 있는 하후남(47세. 유림 옥동)씨. 종갓집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올해 명절 장보기가 가장 힘들었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건 알았지만 아직 명절 준비를 끝낸 것도 아닌데 지출이 예상보다 초과됐다" 하씨는 종갓집 며느리답게 알뜰하게 명절준비를 해 왔다. 과일은 과수원에 가서 일하고 얻은 걸 챙겨놓았으며 야채는 촌에서 농사지은 것으로 준비해 뒀다. "오늘은 생선과 전거리. 건어물을 샀는데 나름대로 아껴봤지만 10만원도 더 들었다" 구제역 때문에 돼지. 소고기 가격은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재래시장에는 식육점이 3∼4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오를 대로 오른 돼지고기 값에 식육점 앞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군민식육점을 운영하는 문영욱(71)씨는 “대목장인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20여년간 장사를 했는데 올해처럼 장사가 안되는 건 처음이다” 특히 돼지. 소고기의 경우는 재래시장뿐만 아니라 식육점도 마찬가지다. 함양에서 제법규모가 있는 풀마트 식육점 임태영(39)씨. 명절에 앞서 예년에 판매되는 물량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돼지 15마리. 소 한 마리를 잡아 놨지만 생각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할 뿐이다. 지난 1월 한달간 매주 산지 돼지 가격이 10만원씩 상승해 35만원선에 거래되던 돼지 가격이 70만원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고기 가격을 2배로 올릴 수도 없다. 임씨는 “삼겹살 600g(1근) 13.200원. 3천원가량 올렸다. 소고기 600g(1근) 18.000원에 동일하게 판매하고 있다. 산지 가격이 워낙 올라 마진이 적더라도 어쨌든 손님이 많이 찾아 주는 게 더 낫다"고 한다.이 날은 아무래도 제사상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건어물 가게나 생선가게 앞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백전상회를 40년 가량 장사한 박성도(67세)씨는 손님들에게 비싸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대목장사를 하기 전에 물량을 미리 확보해 두어 가격을 많이 올려 받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보니 대부분 단골손님이다. 조기 1상자가 2만원 가량 오를 정도로 도매가격 상승폭이 높지만 단골에게 비싸다고 똑같이 비싸게 팔 수는 없지 않겠나"밑지는 장사 없다지만 박씨는 40년 단골들을 생각하면 원하는 만큼 이익을 챙길 수도 없다.추운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시골 재래시장의 민심에는 칼바람이 아직 힘을 못쓰는 곳도 있었다.<하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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