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 Talk 40회나이 먹는 것이 싫어지는 나이가 되어 먹는 떡국 한 그릇 내 어린 시절 이맘때의 풍경은 설 준비로 분주한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진다. 집안 대청소를 하고 제기는 물론이고 늘 쓰는 그릇들도 꺼내 일일이 닦고 이불 빨래도 하고 만두를 빚고 가래떡도 미리 뽑아 굳힌다. 차례 음식을 장만하는 마지막 하나까지 다 어머니의 손을 거쳤으며 오랜 시간 절약하면서 아껴두셨던 돈으로 옷을 한 벌 해주셨다. 그런 어머니께서는 이제 늙고 힘없어지셨으므로 내가 대신 어머니를 위한 설빔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조상들이 부르던 <농가월령가>에는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 장만 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세육(歲肉)은 계(契)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서 납평일(臘平日) 창애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이라.’ 며 설에 먹던 음식. 즉 세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만두. 떡국. 각종 전. 식혜. 수정과. 각종 과자류 등 수많은 세찬들이 있지만 그중 으뜸은 단연 나이와 함께 먹는다는 떡국이 아닌가싶다. 남쪽지방에서는 떡만 넣은 떡국을 주로 끓여 먹지만 나의 친정에서는 만두를 같이 넣어 떡만두국으로 끓여 먹었으며. 북쪽지방에서는 떡은 없이 만두만으로 세시음식을 준비했었다. 국물을 내는 방법도 다양하여 사골이나 양지머리. 닭. 꿩고기 등을 육수로 우려내 사용했으며. 가래떡 모양도 어슷하게 썰거나 동전처럼 동글게 써는 등 하나의 이름인 떡국으로 수많은 조리법이 조상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항간에 떡국은 원래 꿩고기를 넣고 끓였으나 귀한 꿩고기를 대신하여 닭고기로도 떡국을 끓였으므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재미있는 유래도 있다.떡국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1800년대 초에 쓰인 <열양세시기>에 “섣달 그믐밤에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는데. 이것을 떡국이라고 한다. 항간에서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을 때 ‘너 지금껏 떡국 몇 그릇째 먹었느냐?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까닭인지 알 수 없지만 설에 먹는 떡국을 일러 '첨세병(添歲餠: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최남선이 1945년에 쓴 <조선상식(朝鮮相識>에는 떡국을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 만물의 부활신생을 의미하는 종교적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새해 첫 날 일 년을 준비하는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가짐을 갖고자 하여 흰 떡국을 끊여 먹는데. 떡국은 순수 무구한 경건의 의미를 담고 있다.’로 기록하고 있다. 어릴 때는 지금처럼 방앗간에 가서 기계로 떡을 뽑는 대신 집에서 직접 시루에 찐 멥쌀떡을 손으로 늘리면서 가래떡으로 만들었었다. 가래떡 늘어나듯이 집안에 재화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세시풍속이라 할 수 있다. 명절마다 가래떡처럼 길게 이어지는 도로 위의 차들을 생각하면 그런 풍속이 생활반경이 지금처럼 넓지 않았던 옛날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 설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옛 방식으로 가래떡을 만들면서 서로의 복을 기원해주는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녹색대학 생명살림학과 고은정ggum23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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