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13일 가축질병대책본부 종합상황반(기술센터소상실)은 매일 오전9시에 상황보고회의를 갖는다. 지난 밤 부서별 순찰지역의 문제점과 오후에 실시하는 역학농가 관리와 방역 등을 매일 같이 실시하고 있다. 정재호 과장은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다 보니 긴장이 느슨해질 수 있으니 주무 부서에서 근무자를 독려하고 담당초소를 자주 방문하는 게 방역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박호영 계장은 구제역 예방은 물론 조류인플렌자(AI)가 전남 구례. 경남 사천까지 발생한 만큼 방역과 예찰활동에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당부했다. 40여일이 지나도록 비상사태다. 날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지금 함양은 구제역과 전쟁 중이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 1월12일 농업기술센터 방역팀과 함께 방역초소 순찰에 동행했다. 초소순찰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매일 저녁7시30분부터 밤12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돼 왔다. 동행 취재 하루전인 11일은 구제역 방역체계가 최상위 심각으로 상향조정됨에 따라 함양군은 기존 7개 초소에서 5개가 추가돼 총 12개가 확대. 운영중이다. 구제역을 막아라[관련기사 바로가기 - 종합상황반장 정재호 인터뷰] 함양군의 구제역 방역체계는 현재 전국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방역은 날씨 탓에 노즐이 얼어서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시설분야에 사용되는 열선을 이용했다. 열선을 노즐에 감고 보일러 온수 통으로 시설처리. 따뜻한 물이 나오도록 해 어는 것을 방지했다. 농업기술센터 방역상황실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들의 꼼꼼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 1개만 설치돼 있는 소독기가 함양의 경우 IC초소에는 2개가 설치돼 있고 장비가 고장이 났을 경우를 대비해 초소 안에는 여유분의 장비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인소독기(차량내부. 사람. 조수석 소독). 열선을 처리하긴 했으나 혹시 얼었을 경우를 대비해 보온통. 이동식고압분무기까지 준비돼 있으며 마지막 3단계로 생석회까지 구비해 놓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농기계 업체와 계약하여 기계가 고장났을 경우 24시간 수리. 조치가 가능하다.함양군은 구제역 예방뿐만 아니라 구제역이 발생했을 경우까지도 대비해 놓은 상태다. 전국적으로 물품조달이 힘들다는 소독약품. 생석회. 염화칼슘도 충분하게 구비돼 있으며 구제역이 발생했을 경우 함양군 가축의 30%를 안락사 시킬 수 있는 준비도 해 두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행안부 측은 함양군의 철저한 준비성에 혀를 내두른 상황. 취재 당일인 12일 국가위기경보 심각발령에 따른 재난안전 방역체계를 점검키 위해 행안부에서 함양군을 방문해 초소순찰은 평소보다 늦게 시작됐다. IC와 도계초소는 24시간 공무원이 함께 근무를 하고 있으며 군계는 밤9시까지 공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이후에는 지역민 등으로 구성된 용역작업자들이. 낮에는 농축협 담당자들이 맡는다. 12일 저녁8시30분 농업기술센터 상황실에서 정재호 과장과 박호영 계장이 초소순찰을 시작했다.<저녁8시43분 백전 오천 구제역 이동통제 초소>백전 물나들이. 아영면 넘어가는 갈림길에 위치한 백전 초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43분. 이곳에는 이날 당번을 맡은 서창수 병곡부면장이 지키고 있다. 부서가 크면 다를 수 있겠지만 서창수 부면장은 5일마다 한번씩 당번을 선다. 이곳초소는 계곡바람이 불어닥치는 곳에 위치해 함양지역 초소 중 가장 춥다. 밤 기온은 뚝뚝 떨어지면서 소독약을 뿌리면 그대로 얼어붙는다. 서창수 부면장은 "추운 날씨를 이기도록 해 주는 것은 군민들의 협조"라고 말한다.<밤9시8분 조동>이종은(재무과)씨는 오늘이 초소 저녁근무만 세 번째다. 12월3일부터 공무원이 투입되어 일주일만에 근무가 돌아왔다. 오늘 조는 저녁8시부터 새벽2시까지 근무다. 6시간씩 4교대로 움직이며 여자직원은 낮에. 남자직원은 밤에 근무한다. 내일 오후에 출근해서 일반 업무도 해야 하는 상황. 조동 초소는 재무과. 휴천면. 문화관광과. 유림면이 맡았으나 초소가 늘어나면서 유림면이 화계로 이동. 지역개발사업단이 추가로 배치된 곳이다.이종은씨는 이날 일반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한 후 식사를 하고 8시 초소에 도착했다. "어쨌든 안 뚫려야 한다. 함양에는 구제역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이종은씨의 말을 들으며 기자의 시선을 잡은 것은 그의 신발. 작업복 사이로 비집고 나온 정장용 구두는 주인의 가느다란 발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본 기자는 면양말에 등산용 양말을 껴 신고 털부츠를 신고 갔음에도 발가락이 시렸던 이날. 방역작업복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있던 구두는 "집에서 급하게 오다보니..."라며 쑥스럽게 말하는 주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밤9시45분 치라골>수동면과 거창 북상 경계에 위치한 치라골 초소. 이곳은 어제(11일)부터 추가된 초소다. 김도원(44세·수동 우명리). 임성택(45세·수동 우명리)씨가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크게 불편한 점은 없지만 날씨 탓에 기계가 얼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내리막길이라 덤프트럭이 빨리 달리고 공사차량이 수시로 이동하고 있어 안전사고에도 유의해야 한다. 군계는 차량통행이 적어 저녁시간대에는 일반근무자 2명이 지키고 있었다. <밤10시8분 본통>이상한(68). 박수봉(60)씨가 지키고 있는 초소. 차량이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소독기가 작동하도록 버튼을 누른다.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버튼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낮에는 차량이동이 많아서 손과 눈을 한시도 놀릴 수 없다. 이날은 호스가 얼어서 물이 내려가지 않아 주전자로 수시로 녹여가며 일을 하고 있다.추위에 떨고 있을 남편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이씨의 아내는 야식을 준비해 왔다. 일을 멈추지 않는 남편의 등뒤에서 아내는 말없이 먹거리를 내려놓고 기다린다.각 초소의 물 공급은 함양소방서 담당이다. 불이 나면 이동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올 수 있어 함양군측은 소방서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통을 최대한 확보해 물을 채워놓고 있다.<밤10시26분 유림면>유림면은 지리산 들어가는 관문으로 생초톨게이트에서 들어오는 차량이 많다. 김두한(64). 유종영(32)씨가 근무 중이다. 날이 추우니 노면이 얼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니 빨리 끝나길 바란다"는 김씨의 말.<밤10시40분>지난 폭설로 마천면 초소는 12일 순찰에서 제외돼 유림면을 끝으로 초소순찰이 마무리 됐다. 순찰팀은 상황실로 복귀했지만 일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취재진은 따로 IC초소로 이동했다.<밤11시17분 지곡IC>오늘로 세 번째 초소근무를 하고 있는 박윤호(경제과)씨는 오후4시부터 밤12시까지 이곳을 지켜야 한다. 지난 일요일 근무하고 또다시 당번이 돌아왔다. 밤12시까지 근무하면 내일은 정상출근이다. 그렇지만 박윤호씨는 내일 오전8시까지 초소에 머무를 생각이다. 밤12시에 집에 가는 사람이나. 12시에 나와야 하는 사람이나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이 뻔하니 한 명이라도 편한 잠을 자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밤11시37분 함양IC>김기현(도시환경과)씨는 낮4시부터 오늘12시까지 근무하며 내일 9시 정상출근이다. 처음에는 4개 과 60명이 돌아가면서 했지만 초소가 늘어나면서 3개 과로 축소돼 인원수가 줄었으니 당번도 자주 올 터이다. 오늘 저녁은 김치도 없이 컵라면으로 때웠다. 상황실 12시간 근무 1번. 3교대로 돌아오는 초소근무 2번. 한 달마다 돌아오는 당직 1번. 40여일 간 김기현씨의 근무일지다. 내일 정상출근해서 일상업무에도 차질이 없어야 하니 요즘 함양군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슈퍼맨.<밤12시>농업기술센터 상황실엔 아직 불이 켜져 있다. 초소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업무 정리. 내일 일과도 계획한다. 밤12시가 넘어야 일이 마무리되고 집에 돌아가 잠을 청하지만 너무 피곤하면 잠도 안 오는 법이다. 뒤척이다 겨우 잠든 시간. 사료차량이 이동할 때쯤인 새벽4시경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수시로 울리는 전화를 받다보면 졸음이 밀려와도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야 한다. 오전9시 보고회의를 열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하루가 반복된다. 41일째 강행군이다. 방역상황실은 낮에도 바쁘다. 위험농가 관리. 의심신고 조치. 비상출동 등 업무를 열거하기도 힘들다. 구제역 예방을 위해 24시간 풀가동 되고 있는 시스템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지금 이 시각 때늦은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청하는 이. 밤샘작업을 마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이. 일상업무를 마치고 초소근무를 위해 준비하는 이들. 한 달이 넘도록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구제역 예방을 위해 힘쓰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격려를 전한다. 공무원들의 사명감이 만들어 낸 튼튼한 그물이 지금 이 순간. 구제역으로부터 함양을 지키고 있다.<하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