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의한자파일116편古典 명심보감(明心寶鑑)3. 순명편(順命篇)<원문原文4> 때가 오면 비바람 일어 등왕각으로 보내어주고 운이 따르지 않으매 천복비에도 벼락이 떨어진다.時來風送 王閣(시래풍송등왕각)이오 運退雷轟薦福碑(운퇴뢰굉천복비)라. <해의解義> 이 글은 당나라 때의 천재시인으로 29세에 요절한 왕발(王勃)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려하고 웅혼한 시풍(詩風)으로 당대를 휩쓸었던 왕발이 아직 나이 어릴 때 일이다. 어느 날 동정호(洞庭湖) 부근에 머물고 있는데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현몽을 했다. 9월9일 등왕각에서 낙성 연회가 있으니 그 자리에 참석해 '등왕각서'라는 대문장을 지으라는 것이 현몽의 요지였다. 그때가 9월7일이었고 등왕각이 있는 남창현까지는 7백리나 되었으므로 하룻동안 가기에는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러나 왕발은 꿈이 너무나 생생하여 배에 오르게 되었고 그 때 순풍이 불어와 배는 날 듯이 달려 단숨에 등왕각에 당도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는 '등왕각서'를 지었으니 하늘이 내린 행운이었다. 이와 반대로 지독하게 운이 없는 가난한 서생의 이야기가 천복비에 얽힌 것이다. 송나라의 가난한 서생이었던 그는 당나라 대명필 구양순의 글씨로 유명한 천복산의 천복비를 탁본하기로 맘먹었다. 당시 재상 범중엄(范仲淹)의 도움으로 노자를 얻어 천복산에 도착한 그날 밤 천둥번개가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벼락이 떨어졌고 그 벼락이 천복비에 맞아 비는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따라서 가난한 서생의 부푼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왕발의 기막힌 행운과 가난한 서생의 지독한 불운에 얽힌 이 고사는 그 뒤 세상을 경계하는 좋은 표본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주註> 時來 : 때가 오다. 風送 : 바람이 실어 보내다.  王閣(등왕각) : 지금의 강서성 신진현에 있음. 당고조의 아들 이원영이 홍주도독으로 있을 때 세웠고 그가 등왕으로 봉해져서 그렇게 부른다. 薦福碑(천복비) : 중국. 강서성 천복사에 있던 비. 원나라 때 마치원이 세웠다가 당나라 대명필인 구양순이 비문을 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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