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희수 목사십년 전 어느 날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하얗게 빛나는 눈 산을 보았다. 8.091m의 안나푸르나였다. 안나푸르나는 네팔이라는 나라에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산이다. 8천미터가 넘는 고산을 의미하는 14좌 가운데 열 번째 높은 산이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그 순백의 안나푸르나를 보는 순간 나는 ‘저 곳에 꼭 가보고 싶다’라는 꿈 하나를 마음속에 품었다. 그리고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내 꿈은 조금씩 자라서 올해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지난 11월 5일 나는 드디어 네팔로 날아갔다. 8박9일 동안 단순하고 천천히 오로지 걷고 또 걸어서 산 속에서만 머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산행을 시작하고 걷고 걸어서 6일째 되는 날 새벽에 해발 4.130m에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다다랐다. 주위는 아직 어두웠지만 안나푸르나 맞은편에 우뚝 솟은 7000m의 마차푸체르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은 안나푸르나의 모습은 눈이 부셔서 그대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다.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고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청명한 코발트블루의 하늘 아래 하얀 안나푸르나는 면사포를 쓴 순결한 신부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에 주위에 마른 풀들은 소리 없이 흔들린다. 이미 마차푸체르 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태양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주고. 멀리 창공을 나는 까만 점 까마귀들이 까옥까옥 울며 날아간다.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버린 안나푸르나! 그 순간 안나푸르나가 내 안에 들어와 버렸다. 나는 안나푸르나가 되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내 두 눈에서 가만히 흘러내린다. 내 자신이 안나푸르나처럼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임을 온 몸으로 깨닫는다. 안나푸르나의 순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새롭게 길을 떠난다. 나의 내면이 빛으로 충만해진 그 순간을 품고 다시 나의 꿈 너머 꿈을 향해 남은 순례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나는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10년이나 키워온 꿈이지만 여행사도 없이 홀로 한국을 떠나는 일이 두렵기만 했다. 그냥 편안히 지낼 걸. 그냥 TV를 통해 보는 것으로 만족 할 걸 왜 고생을 사서하나 하며 후회도 했다. 그러나 가지 않는다면 더 크게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혹 누군가 나를 용감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는 겁 많은 내 속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별 어려움 없이 해 내는 일도 나는 늘 버거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런 나도 한 걸음 내딛고 마음속에 품은 꿈을 향해 도전했다. 이런 나도 용기를 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도전은 나의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과 나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꿈과 도전을 심어주리라 믿는다. 그들은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용기 있고 나보다 젊다. 나는 그들이 더 넓은 곳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하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들이 그런 삶을 향해 발을 내딛을 때 나의 도전과 경험이 그들에게 디딤돌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수많은 선진들의 그 발걸음을 딛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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