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산불 문복주(논설위원)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이후 인간은 이 불을 이용해 만물의 영장이 된다. 추위를 피하고. 생활 도구를 만들고. 음식을 가공하여 먹음으로서 수렵에서 농경으로 정착한 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다. 이렇게 불은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이나 다 그렇지만 불이 가진 또 하나의 악마성 때문에 현대에 와서 불은 재앙이 되기도 한다. 핵폭탄이 그렇고 화산이 그렇고 대도시의 화재와 산불이 그렇다. 함양은 근 몇 년 사이에 산불의 화마로 전국 방송에 몇 번씩 생중계되는 그야말로 화재의 고장이라는 오명과 수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칠 밤낮으로 불바다가 되었던 대봉산(괘관산) 산불. 또 2박3일을 타던 백암산 산불. 얼마 전 지리산 국립공원에 일어났던 산불.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산불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흉터의 골 패인 자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어 눈살을 찌푸린다. 누군가 가을 낙엽 수북하게 쌓여 있는 지리산 중턱에 불을 놓았고. 강풍에 헬기마저 뜨지 못하고 사람은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 불은 지리산을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태우며 천왕봉을 향할 것이었다.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가 없었다면. 진눈깨비의 눈과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전국 최대의 대형 산불이 일어났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할 일이었다. 산불은 대부분 인재로 일어난다. 화재의 80%가 인재다. 즉 사람에 의해 불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사람이 조심하고 예방하면 80%의 산불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인재의 주 요인은 등산객의 취사. 담뱃불. 논밭두렁 태우기. 사람의 실화 또는 고의적 방화다. 그런데 함양에서 일어나는 화재는 고의적 방화라는 여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화재를 일으킨 사람을 명확히 밝혀낸 일이 별로 없다. 실례로 며칠 전 함양의 작은 산골 마을에 가슴 섬쩍지근한 일이 생겼다. 이상한 편지 한 통이 각 가정에 배달되었다.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마을 저수지 댐 증축에 반대한다며 이장과 새마을지도자가 이에 관련하여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놀랍고 주목해야 할 것은 댐 사업을 지속한다면 마을 산을 전부 태워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한다면 하는 자신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마을 전체를 향하여 얼굴을 가린 한 개인의 이 방화 협박은 마치 예고 해주며 일을 저지르는 범법자를 형사 주인공이 쫒는 스릴러 영화 <다이하드>를 보는 것 같다. 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실제적 협박상황인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직도 이 사실을 가볍게 간과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행정에 전달되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관계기관에서는 별 대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산불은 공공의 적이다. 공공의 적을 만들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캄캄 무소식에 불안하게 사태를 지켜볼 뿐이다. 이러다 정말 마을과 산이 어느 날 갑자기 화마에 휩싸인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함양군은 마을마다 산불감시원을 배치하여 산불예방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겨우 최저 임금이라는 일당 35.000원을 받으며 혹한의 겨울바람 속에서 불철주야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산불감시원의 노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불을 내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니 가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산불이 나야 산나물이 많이 난다며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어처구니 없은 적도 있었다. 많은 홍보를 통하여 산불 조심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또 불을 낸 사람은 반드시 찾아내어 엄한 책임을 물어야 주위의 교훈이 될 것이다. 산불이 많이 일어나는 겨울과 봄철. 모든 군민은 고향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담배꽁초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여 공공의 적 산불 예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