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역사 탐방...황산대첩비를 가다수동초등학교 임채중함양에서 인월을 지나 24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황산대첩비가 있다. 고려우왕 10년(1380년) 사근산성을 함락시킨 왜구들은 30리 떨어진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고려 삼도 도통사였던 이성계장군과 여러 장수들은 왜구의 괴수 아지발도가 이끄는 군사들을 황산협곡에서 섬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 선조10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변에다 기념비를 세웠다. 함양 땅 운봉에서 있었던 일이다.(고려사지 실록 기록 참조)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략이 많았으며 횡포 또한 잔인해졌다. 1376년 대마도로부터 왜구들이 대거 침입하여 약탈. 방화. 살인 등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었으며 고려 조정에서는 이성계장군을 삼도통사로 임명하여 이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왜군의 주력부대는 사근산성(함양)에서 배극렴장군이 이끄는 고려군과 싸움에서 500여명의 군사와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앗아가고 연화산성을 피로 물들이고 흘러내린 피가 냇물을 이루어 3일을 흘렀다.(연화산에서 발원하는 죽산천이 혈계를 이루었다. - 수동향토 사적지(구전) -왜구는 다음달인 9월 인월 내 주둔하면서 북상을 노렸다. 조정에서는 놀라 이성계를 전라. 경상. 양광 삼도 도순찰사에 임명하고 대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에 왜구들은 탈출을 괴하면서 버티자 이성계가 산위로 올라가 적을 맞아 싸웠다. 왜군의 우두머리 아지발도는 15세의 소년으로 힘과 무예가 뛰어나고 감옷과 투구로 무장하여 아무도 이를 해칠수 없었다. 신궁이던 이성계는 뛰어난 활솜씨로 적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벗긴 후 화살을 쏘아 죽였다. 사근산성에서 저지른 만행이 벌을 받는 순간이다. 적들은 우두머리가 죽자 오합지졸이 되어 도주하였으며 고려군은 도주하는 왜구를 추적하여 모조리 주살하였다.다시 이곳을 찾은 이성계는 부하들의 공을 비석에 새겼으나 일제 때 일본 군인들은 비석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은 그 잔해들을 ‘파비각’이라는 곳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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