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지영 목사세상에서 사람만큼 작고 사소한 것에 감정이 바뀌는 존재가 또 있을까? 우연히 마트에 들러 물건을 사면서 밝은 웃음으로 대하는 직원의 얼굴로 인해 마음이 상쾌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퉁명스럽고 마지못해 사람을 대하는 표정으로 인해 불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말이 오고가지 않았어도 느낌으로 내가 존중받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민감하게 느끼는 존재가 사람이다.내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때에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왜 이토록 자살율이 높은가? 단지 경제적 궁핍 때문에 오는 문제일까? 경제적 빈곤의 문제라면 오히려 우리보다 더 빈곤한 나라들이 더 자살률이 높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지금 어느 누구로부터도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느낄 때. 사람은 영혼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살아갈 의욕도 무너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사랑과 관심을 먹고사는 존재라 할 수 있다.<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라고 말했다. 관심과 존중을 표시하는 사랑의 형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친절이란 사전적 의미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답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라고 정의한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가 따뜻하고 적극적인 마음이 동반된 것을 말한다.누군들 마음에 사람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과 도피가 아니라. 더욱 다가가 축복하고. 선대하는 태도가 친절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아픔과 상처가 있음에도 결코 원망이나 날카로운 복수심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고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대하는 자세가 바로 친절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사실 진심으로 친절하기가 어렵다. 진정으로 내 안에 상처를 이기고. 아픔을 넘어 남을 존중하며 친절과 온유함으로 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진실된 사랑과 친절에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다. 내가 행하기 어려운 사랑과 친절을 받았을 때에. 우리는 다시금 살아갈 의미를 찾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싸늘한 늦가을 추위에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붉히며 타오르는 단풍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사랑과 온유함과 친절함으로 아름답게 타오르면 좋겠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