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문길 어느 철학가는 진리란 고독한 사람들이 종을 만들어놓고 외로울 때마다 한번씩 치는 종소리의 울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리란 그렇게 허망한 딜레마처럼 꼭 지정된 허망은 아니다. 진리의 기준을 어디다가 걸어두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은 천파만파로 변해가는 것이다. 수년전 내가 아는 사람이 가정에 진리라는 등불이 파산지경에 놓였다. 그렇게 행복하든 가정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상대의 여자 집에 가서 심한 욕설과 행패를 부린다. 그를수록 남편의 애정은 아내보다 그 여자에게 애정이 깊어갔고 결국은 이혼의 가정파산신고를 하겠다고 으르렁대는 참이었다. 살기 싫으면 이혼해! 어찌 이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부부는 나에게 해결책이 없느냐고 묻는다. 훨씬 새 여자 김치가 맛있고 모든 걸 포기하고 그녀와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봐요! 이 철없는 남자야. 뭐 직장을 그만 두고서라도 그녀와 살겠다고? 네 인생 오십 고개 넘어섰는데 과장이라는 인생계급도 떼버리고 그녀에게 빠져 살고  싶다고? 망하려면 해봐! 이미 당신의 가정 진리등불에는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어! 우리 집에 진리의 등불을 다시 켜 주세요! 우리는 이혼이라는 등불아래서 공부하기는 싫어요! 이른 자식들의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혹 아니면 짐작이나 해 보았는가? 이혼으로 인하여 한 가정에 몇 사람의 상처가 일생의 진리등불이 끄지는 일을 생각해 보았는가? 이미 당신의 가정에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박 과장의 아내에게 이른 말을 한다. 사랑에 눈이 멀면 때가되어야 헤어지는 살든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식으로 남편을 미워하면 결국 이혼하고 마는 거지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십시오. 내 남편이라고 해서 나의 소유라고 하면 곤란 합니다. 부부는 사랑의 게임입니다. 물론 미워하는 질투는 이해합니다. 사랑의 신호이지요. 한 가정도 인생의 수행처가 아닐까요? 꼭 남편의 밥을 떠 놓으세요. 옷을 갈아입히세요. 남편은 돌아옵니다. 더욱 내 주위에 모두 나를 위해 장치된 것들을 소중히 바라보세요. 당신의 옆에는 별 같은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을 회상해 보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낄낄대고 있을 때 남자는 무소득자로 몰래 숨어 아내의 화장품을 찍어 바르며 낮 쥐처럼 쪼그리고 앉아 무능력자로 소일한다. 언젠가는 이 더러운 현실에 인공의 날개가 돋아 저 높은 어둠의 빌딩을 뛰어내릴 자세로 솟아나지 않는 인공의 날개를 갈구한다. 어쩌면 이상의 자전적 소설처럼 결말이 슬프고 어둡다. 어찌 초월하지 않고 옆방에서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노는데 한번의 반항도 없이 홀로 날아 가버리는 한 마리의 새를 갈구하며 살아가는 이상의 문학에 나는 박수를 많이 칠 수는 없다. 비록 이상의 문학에 금자탑이 되어버린 “날개” 라는 소설이 탄생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상의 초월하는 힘은 우리 인간사에 큰 약이 될 수가 있다 지금은 그 서투른 박 과장의 사랑이 종결되고 지금 두 부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초월이라는 의미가 그 가정에 등불이 다시 켜진 것이지요. 어떠한 형태로든 살다보면 세상을 초월하며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옆으로 지나 흘러버리며 바보가 되어야 할 때가 때로는 있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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