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복주 논설위원시월 들녘은 함양 어디를 가나 황금물결이다. 긴 장마였지만 유래 없는 폭염 때문인지 벼이삭은 튼실하게 열려 제 머리가 무거운가 너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올해도 풍년이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트랙터가 쓸고 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제법 많은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 가을 햇볕에 그을리며 종일 낫으로 벼를 베었는데 지금은 벼를 베고 나락을 털고 낟가리를 올리고 하는 일을 기계 하나 사람 하나가 순식간에 해재낀다. 참 좋은 세상이다. 첫 나락을 조금 털어 동네 정미소나 절구에 찧고 햅쌀을 가마솥에 앉히고 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쿠쿠 밥솥보다 더 높은 고압의 수증기가 푸식푸식 솟아올라 고소한 밥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아이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여기저기 마당가를 노래부르며 가로지르고. 어머니는 주발에. 사기그릇에. 혹은 양은 낭푼에 어른이건 아이건 할 것 없이 한 고봉 가득 햅쌀밥을 산처럼 퍼준다. 묵은지에 기름기 잘잘 흐르는 쌀밥을 목구멍 아래까지 집어넣고 복어배를 쓰다듬으며 히히 웃던 시절이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풍년이 온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농부들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농사천하지대본의 깃발을 앞세우고 풍물놀이패의 풍악에 맞춰 덩덕쿵 춤사위로 들녘을 신명나게 돌아야 할 농부가 그늘진 눈으로 들녘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추곡수매가가 작년 수준이나 그 이하로 결정되어 질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가슴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 작년 쌀값도 생산원가에 못 미쳐 피땀으로 일군 나락을 길가에 버리거나 논을 아예 갈아 엎어버린 농부의 피눈물 흘리던 모습이 기억에 아직 생생한데 올해도 마찬가지라니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쌀 재고 비축물량이 역대 최고를 나타낸다니 이 또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수년 동안 늘어나는 이 양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것은 농민의 일년 쌀 생산량에 기인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생산에 문제가 아니라 소비의 문제에서 기인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주식용 쌀 소비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꼭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첫째가 쌀 가공식품의 개발과 육성이다. 떡. 쌀과자. 쌀라면. 막걸리는 쌀소비 증대에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또한 아침 거르지 않기 운동이나 학교급식의 우리 쌀 소비 촉진 운동 등은 좋은 방안이다. 노력만 하면 밀가루 대신에 쌀로 10%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니 쌀 수매를 못할 바 없다. 가장 중요한 쌀 소비의 대안은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온 북한 동포에게 쌀을 보내는 방안이다. 이것이야말로 명분과 실리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적 가치창출이라는 점이다. MB정부는 얼마 전부터 북한에 쌀 지원을 금지해 왔다. 이유야 있겠지만 동포에 대한 쌀 지원은 이유와 조건이 필요 없다. 북한 동포가 홍수 피해로 기아에 허덕인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북한 어린이가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는 보고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한 쪽에서는 쌀이 남아 배가 터지고 처리를 못해 고민하는데 한 쪽에서는 쌀이 없어 굶어 죽는다니 흥부와 놀부가 재현되는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FTA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농민이다. 조건 없이 쌀을 높은 가격으로 사주어야 한다. 갈수록 최대의 이윤을 구가하는 전기. 전자. 자동차. 공산품 등 대기업의 승승장구는 좋지만 그렇지 못한 농민의 마음을 국가가 헤아려 보아야 한다. 농촌은 우리에게 아직 고향이다. 부모가 살고 있다. 부모가 무너지면 도시의 자식도 무너질 것이다. 조건 없이 높은 가격으로 추곡수매를 했으면 한다. 마지막까지 가을의 들녘을 지키고 있는 것은 참새와 허수아비로 서 있는 우리를 먹여 살렸던 우리의 아버지. 농부다. 외국은 밀가루. 석유. 옥수수. 쌀을 식량무기로 만들어 벌써 세계를 위협한다. 이 상황에서 끝까지 쌀을 지키고 있는 농부의 마음이 더 다치기 전에 황금들녘에 희망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