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를 아신다면 이 가을에 국화주 한 잔장예모 감독이 만들고 주윤발과 공리가 주연을 한 <황후花>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9월9일 중양절 축제를 앞두고 중국의 황궁은 황금빛 국화들로 가득하고 황제는 황후와 세 명의 왕자들을 황실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국화정원으로 모이게 해 중양절을 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끝도 없이 노란 국화로 장식되어 있던 황궁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니 잊히지 않는 영화였다. 중양절은 중국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명절로 일 년 중 9번째 달의. 9번째 날인. 9월 9일이기 때문에 쌍구의 축제로도 알려져 있다. 9가 의미하는 것은 장수이고. 음과 양의 전통으로 보면 이 두 개의 9는 남자다움과 양이 배가되는 때를 의미한다. 중양절에 중국에서는 국화주와 국화떡을 만들어 먹는데 국화가 악귀를 물리치며 해독제의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제 뒷산엘 갔더니 산국화가 막 봉우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온산을 노랗게 물들일 날이 곧 올 것 같아 감국 아니라도 좀 따다가 말려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고려사>를 보면 ‘한로’는 9월(음력)의 절기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로의 말후 쯤엔 국화꽃이 누렇게 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한로와 중양절은 대개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는 것 같다. 요즘에야 대량으로 금국이란 품종을 재배해 차로 만든 후 상품으로 팔고 있지만 오래 전 조상들은 감국을 따서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썼었다. 이 시기에는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주를 담는 풍속이 있는데 ‘중양절에 국화 피니 / 황금색 떨기들 옥대 비추네 / 향긋한 국화떡 지져 내어 입맛 돋우니 / 용산의 모임엔 꽃 띄운 술잔 있다네 ......’ 라 부른 도하세시기속시가 있을 정도로 조상들은 국화가 피는 계절의 낭만을 한껏 즐기며 살았던 것 같다. 쓰고 달며 약간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혈압과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으며 눈을 밝게 하고 두통에 도움이 되는 국화는 폐와 간을 이롭게 하는 꽃이라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식물로 꽃이 피었을 때 따 그늘에서 말려 쓴다. <본초강목>에도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 위장을 평안케 하고 오장을 도우며. 사지를 고르게 한다. 그밖에도 감기. 두통. 현기증에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산림경제>에는 기국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가을의 향기를 듬뿍 담은 국화를 구기자와 찻잎. 참깨를 이용해 만들어 마시는 차로 국화와 함께 보신익정(補腎益精)하며 눈을 밝게 하고 건조한 폐를 윤택하게 하는 구기자의 효능이 더해져 가을에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차이다. 조선시대 영의정이었던 신용개는 국화를 좋아해 국화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해의 중양절 밤에는 손님도 없이 술상을 차려오라는 심부름을 하러 간 하인이 몰래 지켜보니 국화를 앞에 두고 국화에 술을 권하며 국화꽃잎을 따서 술잔에 띄워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풍류를 알던 조상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쫓기며 사는 현대인들도 곧 국화가 필 것이니 한 번쯤은 그런 여유 있는 사치(?)를 누려도 좋을 것이다.     - 녹색대학 생명살림학과 고은정 ggum234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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