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춘<시인.문학박사.짚신문학회 회장> 호랑이해 올해 564돌을 맞는 한글날이 언제 생겨나서 어떻게 걸어 왔는지 간단히 그 발자취를 살펴보기로 한다.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에는 민족정기를 되찾는 구심점을 삼고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가갸날을 제정하기로 했다. 왕조실록 113 세종 28년 9월조에“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를 근거로 하여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 곧 한글반포 480주년 되던 해에 한글반포를 기념하는 '가갸날'을 선포했다. 1928년에 이름을 '한글날'로 고쳤다.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선생이 큰글. 하나의 글 등의 뜻으로 지은 것이다.1931년에 그레고리오 달력으로 양력 환산을 해보니 10월29일이었다. 10월29일로 한글날 기념식을 올리다가 1934년에 음력의 양력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겨 전문기관에 다시 맡겨 하루 틀린 10월28일로 되어 1940년까지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해 왔다.1940년 7월 일제 말기에 안동 이한걸님 댁에서 훈민정음<국보70호>원본이 발견되었다. 이 책 끝에“정통 11년 9월 상한”이란 말이 기록되어 있었다. 상한이란 말 때문에 음력 9월10일을 양력 환산하니 10월9일이 되었다. 일제 말기 패전이 짙은 일본은 집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아 한글날 기념식은 광복 때까지 할 수 없었다. 광복 직후 한글반포 500돌이 되던 1946년 10월9일 서울 시민 2만여명이 덕수궁에 모여 한글날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1980년까지 한글학회 주관으로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하던 것을 1981년<535돌>에 서울시가 1년 주관하고 1982년부터 문화공보부<문화관광부>가 주관하여 한글날 행사를 치러오고 있다.1990년 노태우 정부는 경제계 중심으로 10월에는 공휴일이 많아 생산에 지장이 있다는 내용을 여론으로 몰고 가서 한글날을 단순 기념일로 격하시켰다. 언어 문자관이 없는 무지의 소치로 반시대적 반역사적 행위였던 것이다.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글문화단체가 1948년 제헌국회가 만든 법률 제6호의 한글전용법을 강조하며 정부. 국회. 일반사회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고 국보 제1호로 만들어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문민정부가 되어도 식민지 교육을 받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오히려 한자단체의 주장을 옹호하며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한결같은 한글단체의 꿈은 노무현 한글세대 대통령에 와서야 국경일로 된 것이다. 2005년 12월8일 국회의원 153명의 여야 의원의 만장일치로 한글날은 국경일로 승격된 것이다. 15세기 이후 비로소 한글이 바른 대접을 받는 일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화한다고 초등학교에 영어공부를 실시하여 지금 나라는 온통 영어 식민지로 전락되어 있다. 중학교 900자 고등학교에 900자. 1800자의 한자를 가르치는데도 21세기 잠꼬대에 젖은 국한혼용론자들은 고통의 한자를 초등학교에도 900자를 노출시켜 가르쳐야 한다고 시대역행의 소릴 하고 있다. 2009년 10월9일 한국의 심장인 광화문 광장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모셔놓고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 광복절에 기껏 복원한 광화문 현판을 반시대적 반역사적 한자현판을 달았다. 영어로 시장 때 하이서울을 만들더니 지금 이명박 정부에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언어 문자관이 없어 보이는 것은 전직 양김 대통령과 큰 차이가 없다. 프랑스 국민처럼 자기 나라말과 글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도 564돌 한글날을 맞으며 정부는 속히 온 국민의 축제일이 되는 한글날이 되기 위하여 하루속히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고 우리 오늘의 혼란한 우리말과 글을 깨끗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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