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도의원 문정섭지금부터 50∼60년전 필자의 어린 시절 먹고사는 것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논이라도 몇 마지기 소유하고 머슴이라도 있는 부자들은 들농사를 지어 쌀밥을 먹을 수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보리밥은커녕 하루에 두끼는 쑥털털이나 송기떡 고구마나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쑥털털이는 봄철에는 그래도 부드러워 먹기가 나은데 약이 차고 나면 먹기가 고약스럽다. 그것도 쌀이라도 빻아서 넣으면 나은데 밀기울이나 밀가루를 넣으면 맛이 반감이 된다. 쑥은 소화도 잘되고 밥맛의 구미를 당기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거나 부작용은 없었다.봄철 소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가 되면 산에 가서 소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내피를 벗겨 절구통에 찧고 여기에 쌀이나 밀가루를 넣어 만든 송기떡은 질기고 맛도 별로였다. 하지만 식량이 귀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이마저도 큰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부모님들이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감히 짐작이 가지만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 한번쯤 회상할 때 눈물이 절로 난다.배고플 때 남의 집 감나무 밑에 가서 떨어진 홍시를 다 주워 오고. 남의 집 모내기나 일하러갈 때 온 집안 식구가 그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어야하고. 마을에 길흉사가 나면 콩나물에서부터 메밀묵과 도토리묵을 만들어 품앗이를 하던 그 시절. 우리조상들은 다 그렇게 하며 살아왔다. 어떤 이웃집 노부부는 겨울철 먹지 못하여 부왕이 났다면서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끼니거리가 없어 내일 아침 먹을 식량을 이웃집에 가서 빌려야했다.장기적인 식량해결을 위해 장래쌀을 10되를 빌려 오면 이듬해 20되를 갚아야하는데 이듬해도 흉작이 들면 2년 뒤에는 40되가 되니 부자나 양반들은 계속하여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영영 헤어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쌀값이 형편없고 여러 가지 대용식이 많아진 요즘 하루 일하면 쌀 80kg 한 가마니를 구할 수 있으니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먼 아프리카나 중앙아세아에 우리의 과거와 같은 지구촌이 있으니 그때와 대비가 된다. 하루빨리 우리경제가 되살아나 북한은 물론 세계 곳곳 지구촌 배가 고파 허덕이는 기아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는 것만이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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