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한 알 한 알에 담긴 뜻을 새길거나입추(立秋)와 처서(處暑)가 있는 8월이 지나가고 밤의 기온이 크게 떨어져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이슬이 된다는 9월이 시작되었다. 며칠 지나면 첫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라지만 어제오늘 사이엔 곤파스라는 태풍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자연이니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늘은 높아지고 청명한 날이 계속되어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때가 될 것이다. ‘제철 음식’이 의미를 잃고 ‘사시사철 음식’이 판치는 시대가 되었지만 로컬푸드. 슬로푸드. 약선음식 등이 회자되면서 점차 건강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제철음식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조상들이 생활화했던 24절기를 통한 농사로 절기 음식. 혹은 세시음식의 지혜는 우리 현대인들이 잊지 말고 본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가장 맛이 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만 먹고. 처서(處暑)에는 복숭아가 제 맛이고. 백로(白露)에는 포도가 제일이라고 한 조상들은 과일 하나까지도 제철을 찾아 가려먹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포도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100년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 “열매는 자줏빛과 흰빛의 2가지가 있는데 자줏빛이 나는 것을 마유(馬乳)라 하고. 흰빛이 나는 것을 수정(水晶)이라고 한다. 그리고 둥근 것도 있고 씨가 없는 것도 있는데. 음력 7∼8월이 되면 익는다. 북쪽지방의 과실 중에서 제일 진귀한 것이다”라고 기록 된 것을 보면 실제로 청포도와 붉은포도의 재배는 귀해서 그렇지 적어도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조선왕조실록에 연산군은 1505년 경회루에서 대비와 함께 연꽃을 구경하는데 승지가 수정포도를 얼음과 함께 쟁반에 담아 바치니 시 한 구절을 내리기를 “얼음 채운 파랑 알이 달고 시원해. 옛 그대로인 성심에 절로 기쁘네. 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주겠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포도를 과실로서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이용한 조상들의 식약동원(食藥同源-식재료와 약의 근원이 같음) 식생활철학을 알 수 있다.포도는 심장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갈증을 없애주며. 껍질에 많은 안토시안이라는 색소는 암과 심장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노화를 억제하고 시력 저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긴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위에서 바로 흡수되는 단당류인 포도당은 포도에 가장 많은 당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피곤할 때 먹으면 곧바로 흡수되어 빠르게 기운을 내주는 유일한 과일이라 할 수 있으므로 많이 먹으면 좋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조상들은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했는데.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한 알을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자식에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포도를 먹으면서 부모님의 고마움을 새기기에 좋은 계절이니 혹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다면 지금 당장 전화라도 드려볼 일이다. - 녹색대학 생명살림학과 고은정 ggum234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