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순 논설위원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걸 보면 덥긴 어지간히 더운 것 같다.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와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 계곡과 바다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함양에 살고 있는 한. 떠나는 것 보다 떠나온 자들을 맞이하는 경우가 휠씬 많은 것 같다. 웬만큼 이름 난 곳이 아니고서는 함양만큼 훌륭한 여름나기 명소를 찾기가 힘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유난히 사람들이 몰리는 몇 군데가 있다. 많은 비가 내리고 난 뒤 수량이 풍부해진 용추계곡은 볼거리가 풍부해 하루에 수 십대의 관광버스가 진입을 하고 자가용 방문객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용추계곡. 용추로 불리는 계곡은 우리나라에 몇 군데가 있다. 문경 대야산. 창원 정병산. 보성 웅치산이 그러하다. 위치는 다르지만 한결같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소가 깊고 물이 맑아 경치가 훌륭하다는 공통의 자랑거리가 있다. 함양의 용추계곡은 숨은 명산이랄 수 있는 기백산과 황석산에서 흘러내린 계류가 만나 만들어 낸 계곡으로 주변풍광이 아주 훌륭한 계곡이다. 계곡이 시작되는 기점부터 심원정. 매바위. 삼형제바위 등 전설이 있는 바위가 있고 신라시대 창건한 용추사와 그 유명한 용추폭포가 있다.폭포는 여름철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 보는 즐거움에 소리로 진동하는 감동을 마음에 전달한다. 아름다움. 시원함. 신비로움을 선사하는 폭포는 천상의 선물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배경으로 곧잘 등장한다. 금발머리. 빨간 립스틱. 하얀 피부. 풀린 듯 애매한 시선. 마릴린 먼로를 연상했을 때 떠오르는 말들이다. 영화 ‘나이아가라’는 폭포의 장대함과 맞물려 벌어지는 서스펜스 이야기로 그녀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 버린다. 거대한 폭포 속으로 배 한 척이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이름이 나 있는 폭포는 거의 영화나 CF로 혹은 뮤직비디오의 배경장소가 된 곳이 많다. 아무리 숨어 있어도 좋은 곳은 어떻게든 찾아내는 인간의 집요함이 순간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공유가 필요한 나눔의 배려가 적용되기도 한다.전설처럼 용이 되기 위해 하늘로 성급히 솟구친 이무기의 울부짖는 소린지 15m 높이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폭포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유혹한다. 울창한 나무사이로 난 너른 바위를 지나 내리꽂히는 물줄기는 마음 속의 찌꺼기까지도 확 쓸어 내린다. 폭포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기만 한다. 물소리에 파묻혀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도 하지만 거대함 앞에서 멈칫해지는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이 용추폭포가 영화의 촬영장소가 되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2004년도 제작된 스릴러 영화 <령>으로 영화배우 김하늘과 류진. 남상미가 나왔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 지원(김하늘 분)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연달아 친구들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 역시도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는 내용의 심령공포물로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영화라고 할 수가 있다.영화 <령>에 나왔던 으스스한 분위기와 달리 용추폭포는 정겹기 짝이 없다. 쏟아지는 폭포수를 받아내는 용호(龍湖)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폭포 언저리엔 과일들이 둥둥 떠 있고 정답게 둘러앉아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여름철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이토록 아름다울까 싶을 정도로 그림 한 폭을 연상시킨다.간혹 용기있는 사람이 폭포 꼭대기에서 다이빙을 시도하는 걸 볼 수 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경고 표시를 하고 말리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의 끓는 피는 안전을 뒤로 제치고 물 속으로 뛰어 들고 만다.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할 것 같지만 여름나기를 자청해 찾아 온 이들을 말릴 구체적 명분이 아쉽다.옛 시인의 감흥처럼 기암절벽을 뒤흔드는 물줄기가 십 리까지 뻗어 내리고 “해동의 기이한 승지 이 곳이 제일이라 금강 만폭 송도 박연도 여기만 못하리”라 노래한 용추폭포에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푸른 하늘과 바람소리 물소리를 대신 채워 가져온다면 멋진 여름나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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