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서각 수련생 김기수와 예술을 토론하고 있다.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48함양읍내에 작은 섬이 있다 그곳에 가고 싶다… 함양버스터미널 뒤편 킹스마트 쪽에 무인도같은 섬. 하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지리산 둘레길 찾을 때 나는 이 섬으로 들어가 섬 주인이 연주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듣는다. 만파식적이란? 고전(古典)에 전하는 신라의 신적(神笛)으로 왕이 대금 피리를 부니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 해결되었다고 전해진다. 대금(大芩)을 연주하는 이는 김기룡. 두 다리를 못 쓴다. 장애우이다. 김기룡은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헐렁한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섬 속에는 각종 열쇠. 방사계란. 죽염. 서예작품. 도장 파는 도구들이 즐비하다. “열쇠도 만들고 죽염도 굽고 닭도 키우고 도장도 파고 대금연주도 가르치고 많은 일들을 하며 삽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나는 김기룡의 대금연주를 들으며 천천히 김기룡의 섬을 구경한다.벽에 천상운집(天祥雲集)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하늘의 상서로운 기운이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으로)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뜻이죠”화광동진(和光同塵) 서예도 있다. 풀이하면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 또는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人間界)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 Q대학 무역학과 재학중 산 타다 암벽에서 떨어져 불구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섬 주인 이력서를 공개한다.김기룡은 64년생으로 병곡면 옥계리에서 태어났다. 부(父) 김암이. 모(母) 강말순 사이 3남 2녀 중 장남이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나요?“아뇨. Q대학 무역학과 재학중 산을 타다 암벽에서 떨어져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깨 아래 모두가 마비되어 진주 모병원에서 2년여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2년간 거의 호흡부진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이때 의사가 대금연주를 권유하길래. 대금과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대금은 정말 좋은 악기지요. 대금을 불면요. 음빛깔이 우리 폐부를 깊숙이 찌릅니다. 악기 재료는 대나무인데 대나무 중에서도 쌍골죽이 가장 좋습니다. 이 대나무는 살이 두껍고 단단하므로 소리가 대단히 맑습니다” 제가 만든 단소 정말 좋습니다좀 사주시구려대금 음공수(音孔數)는 모두 6공. 김을 넣는 취구(吹口)와 제 1음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다. 이 청공은 갈대의 속 정을 붙여 소리를 울리게 하므로 매우 아름다운 음빛깔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때. 김기룡은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한 장 준다. 슬기둥 음악교실 운영)-아. 보았습니다. 한국전력 건물 앞에 슬기둥 학원이 있더군요.“그만 뒀습니다. 허허. 운영난으로. 지금은 개별적으로 지도하고 있지요” (김기룡이가 정좌하여 머리를 약간 왼편으로 돌리고 어깨와 수평으로 들어 올려서 취구에 입술을 대고 김을 넣는다. 그리고 대금을 분다. 청아하다. 김기룡은 중요무형문화재이기도 하다)- 가게 앞에 단소를 판다는 문구가 있네요?“대금도 만들고 단소도 만들어 팝니다. 허허 제 자랑인데 목욕재계 지극 정성으로 만듭니다. 좀 많이 팔렸으면 하는데 홍보부족으로 (악기가) 안 나갑니다"단소는 짧은 취악기이다. 길이 40여cm에 내경 지름이 1.2∼1.3cm 정도. 몸체에 뚫린 지공. 즉 손가락으로 막고 여는 구멍이 뒤에 1공. 앞에 4공이 있어 모두 5공이지만 보통은 제5공을 쓰지 않으므로 네 구멍으로 가락을 옮긴다. - 단소 재료는 뭔가요?“오래 먹은 황죽이나 오죽. 얼룩점이 있는 소상반죽(瀟湘斑竹)입니다” - 어떻게 만듭니까.“황죽을 재료로 한다 합시다. 먼저 불을 피워 황죽 진을 빼고 속의 막힌 마디를 뚫은 후 내경을 훑고요 다듬습니다. 이어 V자 모양 취구를 상단 안쪽으로 파고 소리를 내 보면서 전폐음이 맞나 확인하지요. 그리고 0.5cm 정도의 지공을 만듭니다. 이 작업이 참 까다롭습니다” "대금을 불면 가뭄에 비가 내리고 질병이 쾌유되고 적병이 물러갑니다"왼손 엄지로 뒤의 구멍을 왼손 식지 장지 그리고 오른손의 장지로 앞의 구멍들을 차례로 막으며 연주한다.- 함양 각종 축제 때 출연. 단소랄까 대금을 연주했나요?“그럴 기회가 안 주어지네요? (오프더 레코더인데요) 함양 축제 만날 C급 가수나 초대하지 뭐 안 그렇소? 허허” 고려닭 3백여마리방사시켜 키운다- 기수련도 하시는군요?“예. 몸이 이러할지니 이런 몸에는 명상수련을 하는 게 도리죠”- 곧 가을입니다. 독자들을 위해 가을에 맞는 명상수련법 하나 소개하시죠.“한방에서는 가을을 가리켜 족태양 방광경이라고 하죠. 뜻을 풀이하면 오행 상으로 물(수)에 속하며 신경과 표리경에 속하며 방광경은 표. 양에 속하지요. 체내에서는 방광에 속하고요. 방광은 아랫배에 위치하며 주요기능은 신기와 협동. 잠시 요액을 저장하는 곳으로 일정량이 찰 때까지 담아두고 기화작용을 시킨 다음 요액을 체외로 배출시킨답니다. 뭐 이런 것은 전문용어라 너무 아실 필요 없고. 가을은 봄에 뿌려진 씨가 땅을 뚫고 올라와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고 가을의 겸허함 그리고 성숙(열매)을 맺듯이 축기를 통해 쌓은 내적 강인함이 표현될 수 있도록 수려하면서 기운 찬 큰 동작으로 기수련을 하시면 됩니다”- 중국에서는 도장 파는 걸 예술로 여깁니다. (도장) 만들다 보면 어떤 즐거움 있죠?“요즘 죄다 사인으로 서명하므로 도장 주문이 뜸합니다. 도장(圖章)은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새겨 찍도록 된 도구인데요. 즉 다시 말해서 공사(公私)의 문서에 찍어 그 책임과 권위를 증명하는 물건 아닌가요”<신장(信章). 인(印). 인장(印章)이라고도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도장. 혹은 임금의 도장은 국새(國璽)라고 한다. 서예나 그림에. 자신의 작품임을 인증하기 위하여 찍는 도장은 낙관(落款)이라고 한다>“저는 누가 도장을 파 달라 하면 도장 속에 서기를 불어넣습니다. 일월성신의 슈퍼 에너지를요”- 본지를 통해 명장 김기룡의 진면목을 독자들이 알아 줘야 할텐데 하하하.“그러게 말입니다”(웃는 모습이 아늑하고 해맑다) - 서각 문자향도 즐기는군요. “서각 훌륭한 예술장르이지요. 나무 평면에서의 흑과 백의 어울림이 대단합니다. 여러 가지 도구. 재료를 통해 양각. 음각. 입체각. 그리고 공간적. 색채적으로 표현되지요”- 가게 한 켠에 놓인 저 방사 계란. 직접?"한번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고려닭 3백여마리를 키웁니다. 저 계란은 한 살림에 납품합니다"- 고려닭이라?“고려닭은 2001년 경북축산기술연구소와 영남대가 DNA 유전자 지문감식법으로 복원한 토종닭이지요. 경북 재래토종닭과 문경지방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래 토종닭을 결합시켜 탄생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김기룡의 말.“고려닭 볏은 적색이고 목 깃털이 많다. 체형은 장방형. 몸길이는 수컷이 26㎝. 암컷은 22㎝ 내외이며 다리 길이는 수컷이 11㎝. 암컷은 9㎝ 내외입니다.체중은 수컷이 1.9㎏. 암컷은 1.2㎏ 정도. 연간 산란수는 80∼180개로 95% 이상이 수정란이죠. 타원형으로 껍데기는 갈색이고 무게는 52g내외이고요. 크기가 일반 식용닭보다 20% 정도 작은 것이 흠이랍니다. 고려닭은 몸이 가볍지만 날개는 강해서 10여m를 날아가기도 하지요. 또 알을 품는 모성본능이 뛰어나 병아리를 10여마리 이상씩 기르기도 합니다"- 지금 운영하는 이 가게 묘하게 생겼습니다. 이 땅주인인가요?“아닙니다. 곧 철거됩니다. 어디 마땅한 곳을 찾아 보따리를 싸야 할 운명입니다”- 어쩌나. 제가 보기에 김기룡씨는 함양의 명물로 손색이 없는데…“어떤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몸이 불편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나는 몽상에 잠긴다. 김기룡 대금소리가 함양 밤하늘에 퍼져 나간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이 대금소리가 한 마리 금시조(金翅鳥)처럼 보일까? ●사족=금시조를 가루라(迦樓羅) 또는 가류라(迦留羅) 등으로 음역(音譯)한다. 불경에는 ·묘시조(妙翅鳥) 등으로 의역(意譯)되어 있다. 사천하(四天下)의 큰 나무에 살며. 용(龍)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두 날개는 펼치면 그 길이가 336만리(里)나 되며 황금빛이다. 대승(大乘)의 경전에서는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일명 팔부신중)의 하나에 들어가 있으며. 밀교에서는 범천(梵天)·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고 말한다. 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