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목사 김지영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만일 목사가 안 되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목수가 되어 집을 짓고 있을까? 내가 어떻게 이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지난 인생의 선택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가 이제 어느 덧 길이 정해지고. 이제 이 길을 기쁘게 가고 있다. 이것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동시에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갖게 되는 소원은 내 자녀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에 진정 자신이 기뻐하며 보람되게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된 욕심으로 학교공부를 억지로 강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정 내 자녀가 그들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얼마나 그들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하여 돕고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고.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때로는 선생도 되어야 하고. 인생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도 되어야 하고. 자녀에게서 내가 깨닫지 못한 사실을 배워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자주 내 자녀를 내 인생의 연장으로. 내가 이루지 못한 이상을 채워 줄 대용품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자녀를 바르게 키우는 것은 우리 부모의 대부분 소원일진대 너무 가까이 집착하고. 다가가거나. 너무 멀리 방관해도 시드는 꽃과 같다.그런 의미에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동시에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한 사람에게 있는 가능성. 꿈을 함께 나누고. 보게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꽃을 하루아침에 피게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교육은 다시금 과거로 회귀하는 우려가 나온다. 한 생명에 대한 각자의 창의력과 상상력. 꿈을 존중하기보다는 획일적 교육. 성적으로 줄 세우기. 영어만능주의 가운데서 시달리고 있는 자녀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더욱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교육은 아이들이 서로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토론하고. 나와 다른 이들을 인정하며. 서로 공동선을 위해서 합의해 나가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교육은 철학이고. 실용적 직업을 위한 교육보다 앞선다고 본다.이 모든 노력이 기성세대와 교육계 있는 모든 분들. 학부모에게 먼저 필요하다.박노해 시인은 ‘아직과 이미 사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직 오지 않는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미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를 굽혀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 시인이 표현한 대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아직’ 바라는 세상에 오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고. ‘이미’우리에게 허락하신 나의 자녀. 나의 제자.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희망을 찾고 보게 해야 한다. 바라기는 6·2지방선거로 새로 선택된 교육 담당자들이 더욱 허리를 굽혀 아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달란트를 보고. 그들에게 잠재된 꿈을 실현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참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