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사막의 교부들이 있다. 이들은 교회가 제국의 보호 가운데 영향력이 커져가고 성장할 때 사막으로 갔다. 철저한 금욕 생활과 기도의 삶을 살아가며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사람이란 것이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에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화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미워한다. 이러한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진상을 제대로 못보게 한다. 사막의 교부들은 말한다.“적개심은 결코 적개심으로 몰아내지 못한다. 누가 그대에게 악한 짓을 하거든 그대는 그에게 선을 베풀어 그대의 착한 행실로 그의 적개심을 없앨 일이다" 더불어 노자도 말했다. "다만. 길을 보여주기 위해 범인을 추궁하라"무하마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대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하고 그대를 배척한 자들과 손을 잡아라. 그대에게 나쁜 짓을 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여라"이와 같이 종교의 지도자들은 성숙한 용서의 자세를 가르친다. 성숙한 용서는 대상을 용서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를 또한 구원한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이에게도 구원은 요원하다. 평안이 없고 들끓는 용광로처럼 스스로를 태워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서가 남 해치는 행동을 묵과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감정. 즉 분노. 증오를 버리는 것이지 윤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숙한 용서는 자기에게 상처 입힌 자들을 용서하고 나아가 사랑까지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가 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용서는 고요한 마음과 평안을 준다.용서를 해야 하는 대상은 우리에게 삶의 길을 찾아가는 데 주어진 숙제이다. 어떠한 사건. 일을 통해서 다가오는 감정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내 삶을 어디론가 인도한다. 아주 작고 볼품없을 지라도 그냥 내게 오는 것은 없다. 그것을 잘 읽을 때 우린 삶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낼 수 있다.하여. 사람이나 일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어야한다. 그것에 걸려 있으면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용서는 이 때 필요하다. 용서는 용서를 하는 자와 그 대상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던져주고 기회를 제공한다.그 너머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행동할 때 우리 삶은 진정한 자유함에 한발 더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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