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우 칠정교회 목사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후변화 역시 우리 모두가 겪어 본 대로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엊그제 일만 해도 그렇다. 춘삼월 호시절에 웬 눈이란 말인가? 하긴 아무리 눈이 내려도 계절은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 지역은 남부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타 도시보다 따뜻한 지방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맘 때 눈을 뿌리기가 미안했던지 진눈깨비로 시작을 하는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좌우 대결로 시간을 허비해 왔다. 누구든지 흑백논리로 몰아 부치면 할 말이 없는 사회였던 것이다.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면 그 사람은 회색분자가 되고 마는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눈깨비가 주는 교훈은 대단한 것이다. 자연현상에서는 꼭 ‘눈’이 아니면 ‘비’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는 모양이다. 진눈깨비가 내리면 ‘왜 눈 오는 날. 비가 내리고 난리냐?’고 말할 것도 없고. ‘하필이면 비가 오는 날 눈이 올 게 뭐냐?’고 몰아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여우비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려거든 제대로 내릴 것이지 멀쩡하게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는데 웬 비냐?’라고 하든지. ‘비 오는 날 어지간하면 해가 좀 숨어 있던지 할 것이지 입장 곤란하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면 어쩔 거냐?’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여름에 긴 무더위를 식혀주는 여우비도 매력이 있는 것이고. 어정쩡한 날씨에 진눈깨비로 흩날리는 모습도 정겨운 일일진대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가급적 의견의 일치를 이루면 좋겠지만 각자마다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꼭 내가 저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해 주어야 할 이유도 없고. 또 저 사람이 우리들의 의견에 동조를 해 주어야만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흑백논리 앞에서 자신 있게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 문제도 나름대로 그들만의 논리적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이쪽 편이오? 아니면 저쪽 편이오?’라고 묻는다면 언제든지 이쪽에 설 것인지 저쪽에 설 것인지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심적 부담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조금 모자란 듯 보일지라도. 또 때로는 딱 부러지지 못한 우유부단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이 세상을 좀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진눈깨비나 여우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