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함양군 보건소 앞의 도로가 시끌벅적하다. 경칩을 향한 봄의 향연을 느끼듯 70여명의 참가자들은 상큼하고 밝은 얼굴로 주간함양과 (주)인산가(대표이사 김윤세)에서 마련해준 지리산 함양고속 버스에 삼삼오오 대오를 가진 채 오른다. 국정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참가에 동참하여준 신성범 국회의원을 비롯해 문정섭 도의원과 본지 김윤세 대표이사가 동승한 가운데 일행을 태운 버스는 출발지로 향했다. 전북 인월면 매동마을에서 시작하여 상황마을. 등구재. 마천 창원마을. 지리산 롯지. 금계마을 약16km로 4시간 소요를 마음에 담고 참가자들이 힘찬 발걸음을 시작한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마을 너머엔 저 멀리 큰 산들이 아슴 아슴 하다. 지리산 곁가지 산들은 곳곳에 마을을 품고 있다. 산들도 슬플 땐 가끔씩 눈물을 흘려서 ‘작은 눈물샘’ 연못을 짖는다. 그 곰삭은 연못물로 들판을 적신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한밤 속울음을 울며 발 밑의 곡식을 키운다.논두렁엔 경칩을 앞둔 2월 말이라 노란 달맞이꽃이 금새라도 방긋 피울 듯한 기온에 발걸음이 가볍다. 지난 겨울 쉴새없이 휘날렸을 하얀 눈보라가 길가의 버들강아지에 옮겨 붙어 놓은 듯 앙증맞게 버들강아지가 뽀송뽀송하게 수줍은 듯 산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참가자들은 쉬지도 않고 잘도 걷는다. 시작도 끝도 없는 듯 터벅터벅 걷고 또 걷는다.산행을 시작한지 22회째... 걸으며 지나간 산행들을 되새겨 본다.문득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산에 오면 탁 트인 산길을 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저 길들은 온몸 육신의 핏줄기 마냥 이어져있을 길들을 상상해보며 앞사람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그냥 걷는다. 갑자기 좋은님과 함께하니 詩한수가 생각난다/그대에게 보이고 싶어 꽃이 됩니다. /그대에게 가고싶어 향기가 됩니다. /그대에게 기대고 싶어 잎이 됩니다. /그대에게 머물고 싶어 싹이 됩니다. /그대에게 젖고 싶어 싹이 됩니다. /그대에게 안기고 싶어 나비가 됩니다. /그대와 걷고 싶어 바람이 됩니다. /그대의 노래이고 싶어 종달새가 됩니다. /일어나리 일어나리 /피어나리 피어나리 /뜨거움이 닿아 오늘 일어났습니다. /그리움이 올라 오늘 피어났습니다. /그대는 봄 /나는 3월의 노래.... 혼자 읊조리며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 팻말을 보며 걷는다. 지난해 1월 제13차 산행으로 걸어본 이 길을 나는 오늘 또 걸어간다. 전북 인월면 매동마을 뒷길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마을 주민들이 심어놓은 고사리밭을 지나 1구간 정식 코스는 어릴 적 걸었던 필자의 동네 어느 한켠을 걷는 듯 동심에 젖게 하며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코스. 저마다의 옛 추억을 더듬듯 얕은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걷는다. 그 유명한 설화 변강쇠 옹녀가 함께 사랑을 나누며 넘었다는 등구재를 앞두고 일행들은 주막집을 들렀다. 이곳에서 문정섭 도의원이 배낭 가득히 메고 온 오디주에 옻순 나물에. 주막에서 주문한 막걸리에. 또 두부 김치로 갈증을 푼다. 전날까지 비를 내려준 자연에 감사를 하며 등구재를 향하는 발걸음은 모두들 헉헉거리며 오른다.난 냅다 창원마을까지 한달음에 내달아 먼저간 일행들과 반갑게 조우를 하고. 여기서 벽송사 서암까지의 당초 일정과 지리산 롯지로 향하려는 사람들과 찬반의 논의를 벌여 50여명이 지리산 롯지로 향하고 20여명은 마천면 금계까지만 걷기로 하고 대오를 정비하여 다시 비지땀을 흘리며 상큼한 바람을 맞는다. 지나는 오솔길에 새소리. 새잎은 틔우려는 풀 내음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 경칩을 향하는 둘레길은 겨우내 잠들었던 시간의 태엽을 풀어주고 있다. 머잖아 엄천강변에는 진달래가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을 테고. 조만간에 사람들은 꽃 잔치를 즐기기 위해 북적거릴 것이다.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은 아쉽게도 휴천 송전에서 스톱되어 있다. 그러나 행정이란 효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법이기 때문에 이곳의 필요성을 직시한 신성범 국회의원이 지난해 국회에서 예산 확보를 해놓아 조만간 다시 둘레길이 이어지리라 짐작해 본다. 필자 마음 같아서는 인위적인 개발보다는 다른 쪽으로 접근했으면 싶은데. 행정적인 일이 어디 이녁 마음처럼 쉽겠는가. 그러나 요즘은 개발 중심보다 환경을 이용한 ‘슬로시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올레길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또 창평은 슬로시티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아예 지자체가 나서서 슬로시티 관광지로 승부를 걸겠다고 한다. 이들 지자체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든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좋은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득 지리산길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한 도보 여행자의 5가지 약속을 말하고 싶다. 지리산길 시범구간이 열린 후 많은 분들이 찾고 있다. 특히 언론 보도가 늘고 걷기여행에 좋은 봄을 맞아 한정된 시범구간에 갑작스런 여행자 증가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리산길은 직선의 길. 수직의 길이 아니라 느리게 성찰하고 느끼며 에둘러 가는 길이다. 이 길을 허락해주신 마을과 숲속 생물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길의 소중함을 함께 지켜가기 위한 다섯 가지 약속에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당부해본다. 1. 여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한다.개발된 관광지가 아닌 마을과 숲길을 걷는 길이다. 미리 홈페이지 등을 통해 걷는 구간과 숙박 등을 계획하시고. 편의시설을 만날 수 없으므로 도시락과 물. 간식 등을 꼭 준비해 가면 좋다. 또한. 식사와 간식 등은 최소한으로 준비하고. 음식쓰레기 등은 반드시 되가져 와야 한다. 2. 단체이용도 개별여행도 가능하다지리산길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터전인 마을과 숲길이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공간에 단체 여행은 그 자체로 불편할 수 있으나 걷기 여행은 호젓함 속에 그 참 맛이 있다. 가족과 친구 등과 호젓한 ‘개별 여행’을 권한다. 3. 주변 농작물과 열매는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한다. 농민들의 소중한 농작물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호기심으로 농작물을 따거나 밭에 들어가 잘못 밟는 행위가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고 지리산길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를 해칠 수 있다. 길가 열매는 마을주민과 야생동물의 몫으로 그냥 눈으로만 담아줘야 한다. 4. 마을에서는 주민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꼭 허락을 받는 게 좋다.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 이웃이 될 수 있다. 먼저 본 사람이 웃으며 인사를 해주면 된다. 또한 생활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사진 찍히는 것은 누구나 불쾌하다. 마을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꼭 허락을 받는 게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5. 대중 교통을 이용하되 부득이 승용차를 가져갈 때 주차는 마을주민들에게 불편을 쥐서는 안 된다.대중교통 이용 또한 도보여행의 일부이다. 자유로운 걷기를 위해서는 대중교통이 훨씬 더 편리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를 이용시는 주차공간을 주민들의 편리를 최대한 존중해야하고 각종 농기구들의 진입에 방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먼저 산사람들의 정착지인 지리산 롯지에 도착한 일행들이 (주)인산가에서 마련하여준 떡국과 자신들이 가져온 과일 등으로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이날 산행에는 초등학생과 함께 온 부모와 직장의 동료들. 그리고 본지의 산행인들을 격려하여준 천사령군수와 박성서 함양군의회의장. 배종원 前의장. 박종환 前함양경찰서장등에게 감사를 드리며 특히 (주)인산가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지리산 롯지에서 우인섭 副社長>1551w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