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영화- 함양엔 영화관이 없다문복주(논설위원. 시인) 요즘 세 편의 영화가 시중에 조용히 뜨고 있다.〈전우치〉〈아바타〉〈위대한 침묵〉이 그것이다.〈전우치〉는 옛날과 현대. 시대를 넘나들며 어지러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는 흥미진진으로 개봉 일주일 만에 500만의 관객을 확보한다.〈아바타〉는 3D 공상영화로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경고하며 아름다운 자연파괴와 경제적 목적을 극대화하여 미래의 지구와 인간의 종말을 예견함으로서 1000만 관객을 이미 확보 한다. 나는 여기서〈위대한 침묵〉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전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반대의 소리 없는 영화다. 사실 162분 상영시간 동안 한마디의 대화가 없다. 오직 바람소리. 촛불 타는 소리. 눈 오는 자연의 소리뿐인 영화. 당신은 한 마디의 말도 없는 3시간의 영화를 한 번도 졸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겠는가. 1688년 지어진 프랑스의 봉쇄 수도원 그랑드 샤르트뢰즈에서 수도하는 수도승의 침묵 수행하는 ‘위대한 침묵’을 찍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전국의 고차원 관객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한다. 네 번을 본 사람. 보고 난 후 20여장 씩의 입장권을 사간 사람들. 명상과 평화의 힘은 가히 놀랍다. ‘마음이 정화 된 느낌’ ‘영화처럼 조용히 삶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 반응이다. 함양에는 불행하게도 한 개의 영화관이 없다. 이 현대에 한 편의 영화를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은 고문이다. 경제성의 논리이므로 무엇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문은 고문이다. 문화의 향유란 배부른 자의 논리여서 배고플때에는 배부른 자의 노래가 된다. 그러나 어찌 사람 사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일까. 문화는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육체와 정신의 지극한 본능이 상승하는 행복지표인 것이다. 열심히 산 일주일. 주말에 가족과 함께 손잡고 상림 숲을 거닐어 보고. 영화 한 편 보러 가고. 아니면 책을 읽는 시간은 분명 지상에서 갖는 작지만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시간들의 하나이리라. 뜻 있는 누군가가 기꺼이 영화관 하나를 지어 문화의 향연을 베풀 수 있다면 그래서 많은 우리의 부모가. 아들 딸들이 여유롭게 찾고 바라보며 울고 웃을 수 있다면 아니 좋을까. 행복추구권과 복지국가 실현의 차원에서 일부 경제적 지원도 생각해 볼만 하다. 70년대 그 옛날처럼 마을마다 순회 영화차량이 한 달에 한번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에 달려 나와 한여름의 시름을 잊었다. 그 옛날의 기쁨을 떠올려 본다. 지금은 돌아 갈 수 없는 머나먼 강이 된 걸까. 이번 주말은 진주로 〈아바타〉를 보러 가는 일상탈출을 시도 해 보자. 문화의 향유는 즐기는 자의 용기다. 〈위대한 침묵〉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