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작품 속에 묘한 기가 흘러야 격조 높은 예술품. 김형구 나한상을 보노라면 견성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나한상. 나한은 6신통(神通)과 8해탈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된다. 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 24조각가  김형구 목조각 바라보노라니 혼곤(昏困)하다 못해 차라리 멍하고 무감해졌다. 문학적 수사를 빌려 표현하면. “나한상을 바라보다 그만 법희선열(法喜禪悅) 세계로 빠져들고 말았소!”김형구 그는. 이왕의 나한상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을 창작. 보는 이로 하여금 신심을 유발케 한다. 본지에 소개되는 나한상. 어떤 영감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나? 막일꾼에서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게 된 그의 이색 미술세계를 심층취재했다.    마이너리그만이 창작할 수 있는걸출한 예술작품  # 지난 12월 4일 오후 6시. 나는 함양 예총제 구경차. 행사장 고운 체육관을 찾았다. 식장에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어이 구형! 막걸리부터 한잔하고 들어가더라고” 뒤돌아보니 마천면 외마 사는 문길 시인이었다. 시인은 (행사장 앞 간이포장마차에서) 먹음직스럽게 생긴 알타리무김치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었다.“가생(언저리)에 앉지 말고 난로 가차운 데로 바싹 다가오이라. 날씨도 추분데. 앗따. 참! 세상에 별스런 축제가 다 있구먼. 삭풍 휘몰아치는 한 겨울에. 무신 예술축제를 한다고 난리법석인지. 할라몬 봄바람 솔솔 불 때 하든가. 예술제 레퍼터리도 진부하기 짝이 없고. 안 그렇나? 보소. 구형. 함양 예술제를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방안 없닝교”나는 시인에게 막걸리 잔을 전하며 “제가 짜다리(별스레) 뭘 아는 게 있어야죠”문길 시인이 속사포처럼 막걸리 잔을 들이키고 냅다 다시 건넨다. “타 지역 사람의 눈으로 함양예술 현주소. 한번 설파해 보란 말이요”술기운으로 인해. 아이고야!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좋습니다. 하죠. 괜히 공치사하는 게 아니라. 제가 봤을 때 함양 예술가들. 너무 조명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죠. 작품은 걸작인데 찬밥 대우를 받고 있는 겁니다. 누구 작품이 걸작이냐고요? Q. W. S씨 대단한 내공을 가진 작가들입니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죠. 지난 여름. 지리산 문학회 주최 지리산 문학상 행사를 지켜보고 저는 참 어이가 없더군요. 왜. 무엇 때문에 연거푸 외지 작가가 지리산 문학상을 수상해야만 합니까? 지리산 문학상이라면 지리산 테마로 한 시인을 발굴해야지 수상작가가 웬 정호승 시인입니까?저는 감히 말합니다. 진정한 지리산문학상 수상작가는 한평생 지리산을 노래한 조종대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함양예술 전반에 대해 사자후을 토하자 문길 시인은 입술을 깨문다. 그리곤 내 손을 꼭 잡으며 “아우. 함양에 있는 동안. 틈틈이 내공 있는 함양 예술가를 찾아내 그들의 작품 깊이를 만천하에 널리 알려주게나. 가세. 오늘 자네에게 걸작을 보여줌쎄”  # 문길 시인과 나는 고운 체육관에 입장했다. 알라(젊은이)들. 공놀이하는 체육관 한 켠에 함양 미협 회원 작품들이 마치 꿔다놓은 보리짝처럼 놓여있다. 입 속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에이라. 손들! 함양 작가들을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미술품에 대한 예의. 전혀 없구먼”허공을 바라보며 투덜투덜 대고 있는데 문길 시인이 내 옷깃을 잡는다. “구형. 저 불상을 보시게나. 비록 체육관 한 모퉁이에 놓여 있지만 주변에 연사만종(煙寺晩鐘)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저 작품 한번 유심히 감상해보게. 마. 나는 저걸 볼라카이끼네 눈물이 펑펑 쏟아질라칸다”실제. 문길 시인. 나한상을 바라보며 울었다. 시인은 거의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깊은 영성에 도달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울고 있었다.  # 문제의 작품은. 깡마른 나한상(羅漢像)이다. 나도 문길 시인처럼 이 나한상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목조각을 바라보노라니 혼곤(昏困)하다 못해 차라리 멍하고 무감해졌다. 문학적 수사를 빌려 표현하면. “나는 오늘 이 나한상을 바라보면서 법희선열(法喜禪悅)의 세계로 빠져들고 말았다!”나한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로 초기 불교 수행의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를 얻고 온갖 번뇌를 끊은 후 깨달음에 이르러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성자를 말한다. 다음은 문길 시인의 나한상 해설. 그는 한때 용추사에서 승려생활을 했다.“나한은 대단한 능력을 가졌네. 삼명(三明)을 갖추고 있다아이가. 3명이란 전생을 알아내는숙명명(宿命明). 미래를 꿰뚫어 보는 천안명(天眼明). 현세의 번뇌를 끊는 지혜 누진명(漏盡 明)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알고 있다네. 이 영능력자 나한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우리네 소원 모두 성취된다고 하네. 구형. 자네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으되 나는 이런 나한상이야말로 진짜배기라고 생각하네. 이 나한상은 이왕의 나한상하고 180도 달라. 이왕의 나한상은 하얀 눈썹을 한 늙은 나한이 반석 위에 정좌. 웃는 표정을 짓는데 반해. 이 나한상은 사바세계 모든 고뇌를 내가 다 받아주마. 그런 거룩하고 심오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네. 다시 한번 잘 보시게. 나는 절로 신심이 일어나네 그려. 발보리심(發菩提心)이!”  문길 시인에게 물었다. “저. 나한상 만든 작가. 누군가요?” “함양 대봉산 자락에 사는 연암(蓮庵) 김형구(金炯九)란 놈인데. 마이너리그(정규 미술대 출신이 아니라는 뜻) 출신이네. 보이는 대로 그리는 얼치기 작가가 아니라 울림이 있는(expression) 작가일쎄. 여보게 구형. 기회가 되면 꼭 김형구 작가 밀착취재 한번 해 보시게”아무렴. 분명코 이 작가를 만나. 나한상 속에 내포되어 있는 상징(symbol). 경구(apophthegm) 등을 알아보리라.   # 눈발이 휘몰아치는 1월 초순. 김형구 작가 작업실(옛 광월초교)을 향했다.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863. 폐교 한 켠. 창고 비수무리한 곳에서 김형구는 창작활동을 한다. 폐교 내에는 김형구 외. 죽염 홍화씨 생산하는 도인들이 살고 있다. 김형구와 수인사를 나눈 후 살짝 그의 관상을 훔쳐봤는데. 얼굴 모습이 묘했다. 내 눈엔 황앵(黃鶯) 몰골로 보였다. 황앵은 황색 꾀꼬리를 말한다. 장안의 이름난 관상가 마의천은 황앵 관상을 이렇게 풀이한다“황앵은 원래 원숭이였는데 절간 수각 거리에서 더러운 것도 탓하지 않고 정성껏 일해 그 공덕이 두드러져 이에 감응한 천신 은혜를 받아 황색 꾀꼬리 몸을 받게 된 것. 이런 관상을 가진 자는 일찍이 육친의 정이 성기어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분주하게 떠돌다 30세 넘은 후 비로소 안정처 만나 의욕 있는 생을 살게 되노라”내가 이렇게 쓸데없이. 주책 맞게 <김형구 관상풀이>를 해대자 김형구. 파안대소하며 “가히 족집게이십니더. 저는 63년생인데요. 함양군 유림면 유평리 오산마을에서 태어났심더. 부친 김경대 모친 박병순이고예. 젊었을 때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청년시절 조선소에서 꽤 많은 보수를 받고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 괜히 사업을 한답시고 뛰어들었다가 무일푼 신세가 되었심더. 단돈 30만원 달랑 들고 마누라 자식 둘. 마누라 뱃속 아기 하나 데불고 이곳 병곡 깊은 산 속으로 들어와 대진고속도로 서상댐 같은 곳에서 노가다(막일꾼) 생활해대며. 어려운 시절을 견뎌냈심더. 낮에는 막일하고 밤에는 나무와 돌에다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칼로 새기며 그렇게 살아왔을 뿐 지는 마. 예술작가가 아입니더“  하필이면 억불봉 선인 왜. 김형구 작가 찾았을까?  나는 김형구에게 물었다. 며칠전 함양 고운체육관에서 그대가 창작한 나한상을 보았는데 이 작품 영감.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가?“전남 광양에 가면 백운산이 있심더. 그 산에 불심 가득한 이름. 억불봉이 있심더. 언젠가 제가 말임니더. 백운산 자락에 노가다를 한 적이 있는데예. 그곳에서 낭떠러지에 돌 쌓는 일을 했심더. 그 일을 하다가 땀을 씻을라고 먼 산을 바라보는데. 아 글쎄. 저먼치 억불봉 꼭대기 아래 둥굴 속에서 가부좌한 선인이 보이는 겁니더. 선인의 얼굴 몸 심지어 손과 발 까정 아주 뚜렷하게 보이더란 말임니더! 선인은 나를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어렵쇼. 어느 순간에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순간. 내 뇌 속에 그 선인 모습이 뚜렷이 각인되는 거지 뭡니꺼. 이후 저는 이 영감을 받고 나한상을 창작하게 됩니더 ”  김형구가 억불봉 아래서 체득한 이색체험을 가리켜 천주교에서는 사적환시(私的幻視). 무속 혹은 기공세계에서는 연정화기(練精花氣)라고 한다. 연정화기란 육신의 정이 기로 바뀌는 과정을 말한다. 이른바 김형구 육신의 정이 기로 변해 억불봉 선인과 조우한 셈이다.  - 뚱딴지 같은 질문인데 왜 하필이면 억불봉 선인. 김형구 작가를 찾았을까요?“아이고 참. 그걸 제가 우찌 압니꺼? 단지 저는 그때 이리 생각했심더. 오늘 억불봉에서 만난 선인은 사바세계 고뇌에 찬 사람들 즉 나. 김형구 같은 놈을 구제해주려는 나한님일 것이다. 이 오묘한 나한님을 나무에다 한번 새겨보자! 그래서 나한상이 탄생한 깁니더”  ▲ 상림공원과 연계해 조성한 하림공원에서 물레방아골함양 캐릭터를 ‘벽천’에 현실성 있게 조가성하고 있는 김형구 작가. 김씨는 6개월의 작업 끝에 물레동자. 신비. 상림옹. 천령과 물레방아를 조각했다.김형구는 사용한 목재는 귀목나무. 귀목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납작한 핵과(核果)로 10월에 익는다. 식물학자 야스민 미하엘 라이트 부부의 말이다. “귀목나무에서 분출하는 진동파는 불안과 불신을 해소해준다”# 내친 김에. 나는 티베트 밀교 명상학자 소남 갈첸 곤다 이론을 빌려 김형구의 나한상을 감상하기로 했다.티베트 밀교 명상법 중에 사마타(止)가 있다. 지(止)란 초기불교의 기본적인 명상법으로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걸 말한다.자. 그럼 김형구 나한상을 놓고 사마타를 해보자.  지금 내 눈앞(미간에서 약 1m 전방)에 김형구 나한상이 있다. 나는 김형구가 그린 나한님이 내 머리 위쪽에 계신다고 관(觀)상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觀)이란 바른 지혜를 일으켜 대상을 바라보는 걸 의미한다.이어서 나한님 모습이 차츰차츰 작아져서 이윽고 내 몸 속으로 들어와서 나 자신과 융합되어 한 몸이 된다고 나는 관상한다. 마지막으로 나한님과 나는 한 몸이 되었으므로 내가 무한한 기쁨에 가득 차 있다고 관상한다.그림이라든가 조각을 지켜본 후 이런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글쎄. 이건 미술이 아니다.부적과 영사부작보다 격 높은 그 어떤 영성체와 다름없다.  병곡면 마평에 개인 미술관 신축중함양 예술 상징 메카로 자리매김할 터  # 김형구는 나한상 외 관음상도 즐겨 조각한다. 관음상이란 관세음보살을 말한다. 관음상 속의 보살님은 흰 연꽃 위에 서 있는데 한 손엔 불사의 감로수 담은 감로병를 들고 있다. 우리는 왜 관음상을 보는가? 그림 속 관세음보살의 영험 감로수를 받아 마시기 위함이다. 이 법수를 받아 마시면 마(魔)의 구름을 세탁할 수 있다. 이 물을 먹으면 이제까지의 열뇌가 청량으로 탈바꿈한다고 한다.김형구는 관음상을 창작할 때 특히 이 감로수 병 모양에 포인트를 준다고 한다. “불교의 여러 의식문에는 감로병을 묘사한 쇄수게(灑水偈)가 들어 있심더.   감로병 중에는 법수의 향기가 가득해. 마운(魔雲)을 세탁하여 시기를 일으키고 열뇌를 소제하여 청량을 얻게 하네.  이 귀하디 귀한 것들이 담겨져 있는 병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안 되잖심니꺼. 그래서 저는 마. 지극정성을 다해 감로병을 새깁니더. 완성된 후 그 희열. 우찌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있겠닝교?“  # 현재. 김형구는 병곡면 마평에 개인 미술관을 짓고 있다. 미술관 1층 기둥이 이색적이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공중에 뜬 나무들처럼 1층 천장을 지탱하고 있다. 내가 알면 뭘 알겠냐마는. 보아하니 미술관 터가 아주 좋다.신축 중인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남향을 바라보니 저만치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보인다.미술관 바로 옆에는 손바닥만한 계곡이 있는데 이름이 와폭이란다.“여름이 오면 저 와폭에 물이 철철 넘칠 깁니더. 저 계곡에 발 담그고 천왕봉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신선이 될 깁니더. 저는 제가 짓는 미술관을 함양의 명물로 키아보고 싶슴니더. 여력이 되면 미술관 앞 저 논밭에 진정한 함양 예술촌을 만들어 고향발전에 일익하고 싶네요. 해서 지리산 마실 나온 사람들에게 미술 감로수 한잔 건네주고 싶슴니더”기대하고 고대하고 파마하시라. 김형구 작가 병곡 마평 미술관!▶ 사족= 앞으로 나는 김형구 마니아가 되리라.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말이 될란가 모르겠다? 독화피안(讀畵彼岸). “그의 그림(조각) 눈앞에 놓고 명상에 잠기노라니 어즈버 나는. 피안의 경지에 다다르고 말았소이다!”    구본갑|본지 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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