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삼휴마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들만의 특별한 보금자리가 있다. 바로 독거노인들의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완성된 홀몸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참조은 보금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르신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주방, 세탁기, TV, 보일러 등 다양한 시설이 준비 되어 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닌 동네의 사랑방이 된 ‘참조은 보금자리’에서 지내시는 삼휴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삼휴마을함양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삼휴마을은 입구부터가 남달랐다. 삼휴마을에 들어서면 마을의 유래에 대해 적어놓은 비석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마을의 뿌리와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세워놓았다. 삼휴마을은 원래는 삼수대 혹은 삼휴동이라고 불렸다. 이는 함양지역의 토성인 함양오씨, 함양여씨, 함양박씨의 시조 오광휘, 여림청, 박선이 삼동서이면서, 고려의 장군들인 이들이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넓적바위 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면서 시국담을 논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삼수대(삼휴동)라 불렀다. 하지만 마을이 생기기 이전부터 자리 잡고, 마을을 지키고 있던 바위는 이제 아스팔트에 짓눌린 채로 일부만이 드러나 있어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리고 넓적바위 바로 앞에는 홀몸노인 주거소인 ‘참조은 보금자리’가 위치한다. 이름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정한 이 곳은 이제는 마을주민들이 모여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사랑방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삼휴마을은 다른 마을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분리수거장이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시골에는 분리수거장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데 이곳 삼휴마을은 마을 입구에 분리수거장이 있었다. 보다 깨끗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분리수거장이 설치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오늘은 마을 잔치 대동회조용한 삼휴마을의 아침이 시끌벅적하다. 지나가는 어머니께 여쭤보니 대동회를 준비하느라 그렇단다. 어르신들을 찾아뵈니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불쑥 찾아간 젊은 사람이 신기한 듯이 잠시 관심을 주셨다가 이내 음식준비에 열중하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마을 잔치 대동회다. 대동회란 일종의 마을 잔치다. “어르신들이 손수 음식을 준비해 마을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눠먹으며 올 한해 있었던 일에 대해 정리하는 행사”라며 노을용 이장님이 설명해 주셨다. 수육도 삶고, 김치도 썰어 내어 놓고, 나물도 무치고 온 동네에 맛있는 냄새가 퍼져나갔다. 오전 11시쯤이나 되었을까 마을 주민들이 속속들이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함께한지가 수십년이라 그런 것인지 목소리만 들어도 ‘○○가 왔네’, ‘△△이 오셨네’하는 어르신들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모일 분들이 다 모였는지 시작한 대동회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되짚으며 잘 못 된 것이나, 보완해 나가야 할 점에 대해 마을 주민 전체가 의견을 제시하며 진행됐다. 내년도 이장도 뽑고, 마을 운영에 대해 의견도 모으고 하다 보니 언성이 오고 갔지만 대동회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챙기며 다 같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마치 여느 가정집의 저녁 식사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는데 삼휴마을 어르신들의 다툼도 칼로 물 베기였다. 이렇게 다 같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올해 보다 더 좋은 내년이 오기를 기원하며 대동회를 마무리했다.함께여서 더욱 즐거운 보금자리대동회가 끝난 후 참조은 보금자리를 찾아가니 “단양댁이 제일 늦게 왔네” “손실댁은 맨날 단양댁만 뭐라카네”라며 토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삼휴마을의 참조은보금자리는 어르신들에게는 사랑방이다. “뜨듯하게 불 때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지”라고 감나무댁 할머니는 웃으며 말하신다. 여러 할머니들이 둘러 앉아 처음 보는 나에게 대뜸 몇 살로 보이냐며 나이를 물어보셨다. 남원댁 할머니를 보고 60대 후반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더니 주변에서 “계탔네 계탔어”, “춤이라도 춰야겠네” 주변의 할머니들이 난리시다. 이유를 여쭤보니 내년이면 82세라신다. 오기가 생겨 다른 할머니들의 나이를 맞춰보려고 했지만 전부 빗나갔다. 다들 외모에 10살 정도를 더해야 제 나이라고 하시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싶기도 했다. 특히 제일 놀랐던 것은 마천댁 할머니인데, 할머니는 올해로 91세시란다. 다들 연세가 적지 않은 것을 보아 삼휴마을이 장수마을인 것 같았다. 장수의 비결을 여쭤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먹을 거 잘 먹고, 마을이 좋아서 그래”라고 하나같이 말씀하신다. 할머니들의 말씀대로 삼휴마을은 다른 시골마을에 비해 공기도 맑고,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마을이었다. 특히 ‘참조은 보금자리’에는 어르신들이 주무시기 때문에 더욱 청결한 상태로 유지 되고 있었다. 삼휴마을에서는 깨끗한 환경이 어르신들의 장수의 최고의 비법이 아닌가 싶었다. 농사철에는 바빠서 보금자리에 모이기 힘들다는 어르신들. “겨울 아니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어”라는 대천댁 할머니의 말을 “요즘은 한가하니까 다들 이래 나와 있지”라며 남원댁 할머니가 거드신다. 마을의 경로 회관이 바로 앞에 있지만 할머니들은 보금자리에서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신다. “방도 따시고, 밥도 해먹을 수 있고 여기가 더 좋지”라며 입을 모아 칭찬을 하신다. 아침에 나와서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쉬면서 다른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고, 저녁도 만들고, 어떤 날은 보금자리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또한 주방이 있어 이곳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 “다 같이 밥 해묵는게 좋지, 밥 짓는 사람도 안 정했어. 그냥 시간 나는 사람이 하는 거지... 누가 밥 해놓으면 그거 와서 먹고 다음에는 시간 나는 사람이 하고 그런거지”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아직까지 시골에는 시골만의 정이 남아 있지 않나 싶었다. 대부분의 할머니가 이곳으로 시집을 오셔서 산다는 할머니들께 처음 삼휴마을로 왔을 때 어떠셨는지 여쭤보니 감나무댁 할머니가 “우리 때는 그런 생각 못하지, 그냥 살라고 하면 사는 거지”라며 웃으며 말했다. 현재는 하루 3번 읍과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다니니 읍내 나가는 일이 쉽지만 처음 이곳을 올 당시만 해도 걸어 다녀야 했다고 한다. 손실댁 할머니는 “읍내까지 대략 10리가 되는데 그 안 좋은 길을 걸어 다녔어... 먹고 살려면 별 수 있나”라고 기억을 떠올리셨다. 그러다 갑자기 읍내까지 10리가 되나 안 되나로 논쟁이 붙었다. 감나무댁 할머니가 “읍까지 무슨 10리여, 얼마 되도 않는데”라고 하시니 대천댁 할머니와 남원댁 할머니는 “얼추 10리 되지 안 될 건 또 뭐있어”라고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이내 이장님이 정확한 수치를 얘기하니 다들 웃고 넘어가셨다. 할머니들은 이런 사소한 언쟁이 있어도 싸우는 일은 없다. “말다툼이야 사람이니까 할 수도 있지, 근데 웬수 지는 일은 안 해”라는 단양댁 할머니의 말에는 왠지 자부심이 느껴졌다면 기분 탓일까. 최근 이웃하고 가깝게 지내는 문화가 도시로 갈수록 사라지는 지금에 이런 분위기를 보는 것이 조금은 낯선 한편 훈훈했다.수십년 이웃, 이제는 한 가족이곳에 계신 할머니들은 서로가 가족 같고 친구 같다. 함께한 시간이 수 십 년이 지났으니 안 보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자식들이 대부분 도시로 나가 홀로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적적함을 달래려 보금자리를 찾는다. “혼자서 가만히 집구석에 있으면 잡생각이 많아져... 그러니 나와서 사람얼굴도 보고 뭐라도 하는 거지”라는 대천댁 할머니는 “그러니까 기자양반이 일거리 좀 구해다줘 우리 덜 심심하게 ”라고 웃으시면서 농을 건네신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이 모이면 어느 집의 마늘 까는 일까지도 모여서 함께 한다. 오후 2시가 되자 어르신들이 담요를 깔기 시작했다. 바로 화투를 치기 위함이다. 평소에는 점당 10원으로 내기를 하신단다. 그것도 동전을 모아놓고 하는 거라 결국은 돈이 안 걸려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단 판이 시작되자마자 어르신들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긴장감이 깔리기도 했지만, “아이고 여기서 이걸 먹네”라는 남원댁 할머니의 말을 시작으로 할머니들이 낄낄대시더니 이내 긴장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흘러 나왔다. 대천댁 할머니는 “아이고 집에 가서 할 일 있는데 여기서 이라고 있네”라며 갈 것처럼 말씀은 하시지만 함께 노는 것이 좋으신지 말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실 줄을 몰랐다. 손실댁 할머니도 자식들에게 직접 키운 호박으로 약을 달인 걸 보내야 된다고 하시면서도 자리를 뜨실 줄 몰랐다. 할머니들과 모여 함께 있는 것이 좋으셨나 보다. 갑자기 마천댁 할머니가 소리 없이 일어나시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화투에 집중한 할머니들은 잠시 뒤에야 마천댁 할머니가 나간 것을 알아채고는 “마천댁 성님은 집이 가까우니까 휙 왔다가 휙 가네”라며 낄낄대신다. 별 일 아닌데도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 다들 마음만큼은 꽃다운 소녀인가 싶다. 할머니들이 화투치시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옆에 앉은 할머니 패도 힐끔힐끔 보고 주변에서 “형님 이거 내면 된다니까”, “여기 이거 먹으면 되겠네”라며 훈수도 두니 4명만 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모든 할머니들이 함께 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을 구경하고 있을 즈음 마천댁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마천댁 할머니는 “내가 장(고추장) 여기 가져다 놨으니까 그거 나중에 먹어”라고 하신다. 동네 할머니들이 마천댁 할머니의 장 담그는 솜씨가 좋아 장맛이 좋다고 칭찬했던 걸 기억하시고 가지러 가셨었나 보다. 보금자리에서 먹는 먹거리는 이렇게 마을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지원금이 따로 나와서 그 돈으로 사도되는데 겨울에 불 때고 하면 좀 모자라니까 동네사람들 끼리 조금씩 모으는 거여”라고 감나무댁 할머니가 설명해 주셨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하는 ‘식구’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오후 4시였다. 할머니들이 화투판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이것도 오래 치면 힘들어서 못 쳐”라며 오늘의 못 다한 승부는 내일로 미뤘다. 대동회 준비를 하느라 피곤하셨는지 일부 할머니는 아예 자리를 깔고 누우셨다. 지곡댁 할머니는 말수가 적은 줄 알았는데 눕자마자 잠이 드시는 걸 보니 많이 피곤하셨나 보다. 젊은 사람들이 있으면 동네 행사를 준비할 때 어르신들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젊은 사람이 얼마나 있냐고 여쭈니 “우리 동네는 60 밑으로는 없어, 다 노인이지 노인”라고 하셨다. 이렇게 동네 행사다 뭐다해서 준비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도 아닐 텐데 어르신들은 “아직은 움직일 수 있으니까 움직여야지”라며 웃어넘기신다. 어르신들도 한분 두 분 자리를 뜨거나, 아예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시니 이제는 가봐야 될 것 같다며 작별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좀 더 있다가지... 벌써 가나”라는 아쉬움 섞인 말과 함께 “오늘 고생했네, 다음에 또 놀러 오이소”라며 오늘 처음 본 나를 마치 손자를 보내듯 대해주시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짐과 동시에 따듯해졌다. 함양읍의 삼휴마을처럼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서 지내는 홀몸노인 거주소를 통해 어르신들이 모여 적적함을 달래고, 청결한 환경에서 지내는 것 등을 통해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예방과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고 어르신들 역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 다른 마을의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생활을 하고 계셨다. 특히 ‘참조은 보금자리’는 이제는 동네 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곳으로 자리 잡아 홀몸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쉴 수 있는 공간이나 풍족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가족의 정이 아닌가 싶다. 아무 일도 없는 이런 날, 아무런 이유 없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 한 번 드려 보는 것이 어떠한가.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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