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상봉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엄천강에 물안개가 끼기 시작할 무렵이면 함양골짝 사람들은 너나없이 감을 깎아 걸기 시작한다. 그러면 옷을 벗은 감은 한 달이나 한 달 보름동안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한 곶감으로 바뀌는데, 이곳 사람들은 곶감을 접는 방식이 좀 별다르다. 마트에 판매되고 있는 곶감은 대부분 종이박스나 투명 케이스에 담아 유통되고 있는데, 지리산 함양 사람들은 곶감을 타래처럼 주렁주렁 끈에 매달아 거래하고 있다. 내가 함양으로 귀농하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는 이십년 쯤 전이다. 이 맘 때 지리산 등반하고 함양 재래시장에 들렀다가 타래곶감을 보고 신기해서 한 접 산 적이 있다. 곶감 한 접을 아파트 베란다에 걸어 두고 그야말로 곶감 빼먹듯 하나씩 맛있게 또 재밌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이제 햇 곶감이 막 나오기 시작하니 지금 함양 재래시장에 가면 타래곶감을 볼 수 있다.(살 수 있다.) 곶감은 백 개 한 접씩 또는 반접씩 끈에 주렁주렁 매달아 팔고 있는데, 이 독특한 방식의 타래곶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해볼만 하다. 지역전통 먹거리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풍경이다. 곶감 오십 개 또는 백 개를 끈에 모양새를 갖춰 주렁주렁 엮는 거 쉽지 않다. 한 접 엮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거니와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모양도 예쁘게 나오지 않는데, 이렇게 주렁주렁 매단 곶감을 개량시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꼬지곶감이라는 것도 있었고 춘시라는 것도 있었다. 지리산 자락 엄천 골짝에는 불과 십년 전만해도 곶감을 긴 싸리 꼬챙이에 산적 꿰듯이 꿰어 말린 꼬지곶감을 쉽게 볼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십년 세월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닌지라 그동안 꼬지 곶감 만들던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근데 내가 사는 운서마을에서는 아직도 안골댁이 싸릿대로 감의 똥꾸멍을 찔러 꼬지 곶감을 만들고 있다. 나는 안골댁의 꼬지 곶감이 하도 신기해서 하나 먹어 보았는데 싸릿대가 닿은 부분에는 살짝 시큼한 맛이 났다. 춘시는 곶감을 도넛처럼 둥글납짝하게 만들어서 엽전 꿰듯 열개씩 실로 묶은 것을 말한다. 개량시, 꼬지곶감, 춘시 등 옛날식으로 곶감 접는 방식은 이제 새로운 포장방식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귀농해서 십년 째 곶감 말려 밥 먹고 사는 내가 곶감 접는 방식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해 보면 이렇다. 첫째. 선물용 곶감- 그 해 만든 곶감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을 선별하여 대바구니와 고급 한지함, 명품선물상자, 난좌박스, 보급형 지함에 포장한다. 둘째. 가정용 곶감- 지퍼 백에 무게만 달아서 막 담는다. 셋째. 못난이 곶감- 때깔이 좋지 않은 거, 흠이 있는 거, 망한 것들은 따로 모아서 똥값에 파는데,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넷째. 떫은 곶감- 지금은 숙성 기술이 좋아져서 떫은 곶감이 발생하지 않지만, 일부러 떫은 곶감을 몇 상자 만드는데, 엄천강을 막아서 지리산댐을 만들겠다는 훌륭하신 정치인에게 명절 선물로 보낸다. (떫은 곶감 묵다 똥꾸멍이 막혀보면 흐르는 강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높으신 분이 얻으시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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